심훈의 『상록수』(문학과지성사)
어머니보다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하다가
심훈의 『상록수』를 처음 만난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였다. 예배당이 비좁아 밖으로 쫓겨난 아이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수업을 듣던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편안히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배움의 열정을 갖지 못했던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꼈던가. 배움 하나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던 아이들의 간절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무엇보다 그들을 위해 헌신한 영신의 모습은 내게 강인한 여성상으로 각인되었다.
작가가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는 또 어떤가. “어머님보다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라는 구절에는 단순한 아들의 효심을 넘어, 민족을 향한 뜨거운 다짐이 담겨 있다. 그의 시 「그날이 오면」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쿵 뛰곤 한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조국광복을 향한 그 간절한 염원 앞에서 잠시 숙연해진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로리까”
지금 들어도 전율이 느껴진다.
이런 강골의 이미지는 『상록수』의 동혁과 영신이라는 청춘 남녀가 농촌 계몽운동에 헌신하는 모습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신문사 주최의 학생 계몽운동에서 만나 뜻을 같이하고, 결혼까지 약속한 두 사람은 개인의 행복보다 농촌운동이 더 절실하다고 여겼다. 특히 영신은 어머니가 바라는 정혼을 단호히 거부한다.
“나는 물론 어머니가 낳아서 길러주신 어머니의 딸이지만 어머니 한 분의 딸 노릇만은 할 수가 없다우. 알아들의겠수? 어머니 한 분한텐 불효지만, 내 딴에 수천수만이나 되는 장래의 어머니들을 위하여 일을 하려고 이 한 몸 바쳤으니까요. 그러는 게 김정근이 하나한테만 이 살덩이를 맡기는 것보다 얼마나 거룩하구 뜻있는 일인지 몰라요.”
다소 작위적이고 치기 어린 구석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문득 심훈이 감옥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가 겹쳐 떠오른다. 개인의 행복보다 더 큰 어머니,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겠다는 결연한 의지. 젊은 영신의 목소리와 젊은 작가의 목소리가 서로를 비추며, 시대를 넘어선 울림으로 다가온다.
영신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농촌 일을 떠맡는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부인들과 친목계를 만들고, 청석학원을 세우기 위해 몇 십 리 길을 걸으며 기부금을 모았다. 하지만 그 무리한 헌신은 결국 그녀의 몸을 무너뜨린다.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왔고, 끝내 청춘의 나이에 눈을 감는다.
영신이 일본으로 떠날 즈음, 동혁은 동생 동화의 마을회관 방화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게 되어 그녀를 배웅하지도 못했다. 영신이 몸이 좋지 않아 다시 청석골로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뒤늦게 그녀의 부음을 전하는 전보를 받고서야 급히 달려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너무 늦게 닿은 만남 앞에서 동혁이 남긴 추도사는,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지금 여러분에게 바친 채양의 육체는 흙보탬을 하려고 떠나갑니다. 그러나 이분이 끼쳐 준 위대한 정신은 여러분의 머릿속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저 아이들의 조그만 골수에도 그 정신이 박혔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조금도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이 채선생은 결단코 죽지 않았습니다. 살과 뼈는 썩을지언정 저 가엾은 아이들과 가난한 동족을 위해서 흘린 피는 벌써 여러분의 혈관 속에 섞였습니다. 지금 이 사람의 가슴속에서도 그 뜨거운 피가 끓고 있습니다!”
영신은 죽었지만, 그녀의 정신은 남았다. 실제 인물 최용신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을 알면, 소설 속 이야기가 단순한 허구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그 울림은 더 깊어진다.
동혁이 심었던 상록수 앞에서 남긴 말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물음처럼 들린다.
“오오, 너희들은 기나긴 겨울에 그 눈바람을 맞고도 싱싱하구나! 저렇게 시푸르구나!”
청춘은 언제나 ‘상록수’와 같다. 꺾이지 않는 푸름, 꺼지지 않는 열정, 그리고 시대마다 이어지는 헌신의 정신. 김민기의 노래가 그렇듯, 이 소설 속 상록수도 꺼지지 않는 젊음의 상징이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특별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고, 심훈은 불과 1년 뒤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작품이 바로 이것이었다니, 영신의 짧은 생과 작가의 생이 겹쳐 보인다.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며 느끼는 건 단순한 감동만이 아니다. 개인의 행복보다 더 큰 어머니를 위해,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더 큰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 시대의 젊음이 지녔던 치열함 앞에서,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내가 누리는 오늘의 평온이 가능하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간절히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