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백석은, 나의 오독이다
나의 백석은, 나의 오독이다
많은 시인들이 백석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나도 그들처럼 백석을 좋아한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라고 하면 머뭇거려진다.
그는 말보다 분위기와 이미지로 와 닿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고 싶었다.
백석의 어떤 점이 그리 매력적인지,
거의 100년이 지난 시인의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잡아끄는지를.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웠던 시들을 다시 톺아보기로 했다.
교과서에 실렸거나 흘려들었던 시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다시 백석에게 붙들렸다.
석사 논문으로 백석을 골랐다가
끝내 마치지 못한 채 대학원을 그만둔 일이
패배처럼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시를 붙잡고 있으면
그 시대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멀어져야 할 시간은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내 유년의 고향 언저리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오래 머물렀다.
낯선 북방의 말들이 있었지만
뜻을 몰라도 먼저 몸에 와 닿았다.
시 속의 사람들은 오래전 사람들인데도
그 말투와 몸짓이 어쩐지
내 주변 어른들과 닮아있었다.
백석의 시는 무엇을 보여주기보다
무엇이 지나간 자리를 남긴다.
비가 내렸다는 말 대신
젖은 것들의 기척을 남기고,
누군가 떠났다는 말 대신
그걸 지켜본 마음의 무늬를 보여준다.
아마 우리가 백석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설명되지 않은 것들,
끝내 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우리 안에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의 시를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한 편을 읽고 나면
그 시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백석을 읽고 있다.
논문으로 끝내지 못한 것을
이렇게 돌아서
조금씩 읽어가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그 일은 하나의 연애처럼 남아 있다.
마음이 깊어지던 어느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슬며시 물러나버렸다.
이별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끝내지 못한 관계.
그래서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 한쪽에 묵직하게 남아
문득문득 나를 건드렸다.
능력이 모자랐고,
처지도 여의치 않았다.
그때의 나는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이 없었다.
그 모든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끝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다시 백석을 읽기 시작한 것이.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그의 시를 붙잡고 있으면
나는 시어와 이미지에 붙들려
그가 지나온 감정의 결을 더듬게 된다.
그 뜻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그 곁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젊은 시절의 나는 서툴고 조급했다.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논문의 형식을 빌려
말들을 늘어놓는 데 급급했다.
그때의 방식으로는
지금처럼 백석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읽는 백석은
어쩌면 오독의 백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를 내 방식으로 받아들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남다를 수는 있어도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아직도 그와 나눌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와의 연애를
끝까지 가보고 싶다.
중간에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까지 붙잡고,
끝내는 자리까지.
그래야 비로소
이 오래된 관계를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