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찬란한 아름다움

by 롤로로

땅거미가 질 즈음 상념에 골똘히 잠겨 터벅터벅 걷다 문득 주황색 빛을 내뿜는 곳에 이끌려 고개를 돌린다. 난 매번 그 빛에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빼앗긴다. 날씨는 무척 더웠지만, 그 빛은 날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든다. 몸은 얼어 꼼짝도 할 수 없지만, 정신은 그 순간에 세상으로부터 유리되어 이내 자유로워진다.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명징해진다. 그렇다, 난 노을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평생 간직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되어 화가들이 붓을 들어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리듯, 나 또한 욕심을 부려 핸드폰을 들어 카메라로 미처 다 담기지 않는 노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눌러 담아본다.

아름다움은 항상 그에 상대하는 객체의 주의를 모조리 빼앗아버린다. 빼앗긴 이는 무력하게 주의를 앗아가는 주체에게 작은 반항조차 할 수 없다.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다. 이성을 순간 마비시키고 주체에게 매몰되게끔 만들며, 그 무엇보다도 선행하여 그의 심리에 강력하게 작용한다.

통시적인 관점에서 개체마다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매번 바뀔 수 있겠다. 그러나 노을에 관한 나의 심미안은 항상 일관될 것이다. 노을을 볼 때마다 매번 그러할 것을 확신하고 또 자신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감흥이 없지 않을까, 하는 나의 의심은 항상 무위에 그친다. 그 찬란한 광휘는 매번 내 의심을 가볍게 거두어간다.

노을과 함께 그 빛을 휘감은 구름이 보인다. 구름도 내 마음에 동조해 노을이 자신에게 주황빛 광채를 휘감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 노을이 빛을 감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건 그 구름이 수동적이어서가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탄복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하나의 과정임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무언가 나를 감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의 빛이 나를 바람직하게 만들 수 있다면 나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 또한 나 자신이 수동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줄 양분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