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된 순수함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과 비례하여 매 순간 생소하게 들려오는 알람진동음. 나만이 감지할 수 있는 그 선율과 그 선율들 사이의 공백들이 조화를 만들어내며 형성된 멜로디는 낯선 곳을 배회하던 나를 끄집어내어 단숨에 현실로 가져다 놓는다. 눈을 뜨며, 날숨인지 한숨인지 분간되지 않는 모종의 뭉텅이가 내 입 밖으로 빠져나오게 되고, 그 뭉텅이 속에는 나의 책임과 의무가 섞여 들어가 있다.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한다.
나의 필요와 사회의 필요가 결합되어 만들어낸 책임과 의무는 나를 기성의 틀, 사회적 규범 속으로 욱여넣는다. 그 비중은 꽤나 무거워, 내 삶에서 상대적으로 유희와 즐거움은 줄어들게 된다. 어릴 적부터 나만이 가지고 있는 즐거움의 코드가 있다. 그걸 남이 본다면 유치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타의적으로 나는 나만이 갖고 있는 유치함을 숨겨왔다. 어른이기에, 사회인이기에, 또, 그렇게 보이고 싶었기에 내면 깊은 곳에 숨겨놓는다.
유치함을 왜 숨기고 싶어 했을까, 어른이기 때문에, 어른으로 비쳐지고 싶어서,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어리다는 의미를 표방하는 유치함 자체를 꺼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상은 건조해지고 삭막해진다. 내 공간을 습윤하게 채워줄 유치함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그 역할을 그녀가 자처한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함께 유치해지고 함께 정결해진다. 그녀는 유치함이란 원석에서 순수함이란 보석만 정제하여 현실 속 삭막함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나에게 제동을 걸어준다. 그렇게 난 맑아지고 더 나아가서 과거로 회귀하게 되며 그 이상으로 나아가, 난 아이가 된다. 어른이지만 아이다.
그녀를 만나는 날, 오늘도 익숙하지만 낯선 그 알람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게 되고, 마찬가지로 입 밖으로 한 뭉텅이의 숨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이 숨은 그전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모종의 성격이 아닌, 한숨도 아닌, 그저 웃음에서 비롯된 숨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난 어른의 옷을 벗고, 아이로 돌아가 마음껏 유치해지기로 한다. 그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