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적 안경

손수 만든 손수건

by 롤로로

안경에 김이 서려 시야가 뿌옇다. 오랜만에 걷는데 부윰한 시야 탓에 세상의 형태만 아스라이 보일 뿐이다. 그래서 그 양태를 바꿔, 걷지 않고 거닐기로 한다. 추상을 의식하지 않고 구체를 의식하기로 결정했기에 나는 걷지 않고 거니는 것이다. 난 최근 보지 못하였다.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머릿속에 떠올라 부유하며 머릿속을 가득 메운 잡다한 생각과 걱정이 뿌연 안경이 되어 내 시야를 가려, 난 보지 못하였다. 수평선을 갈음하는 산등성이, 그 위를 덮고 있는 청명한 하늘을 보지 못했고 그 하늘을 향해 가지를 힘껏, 만연하게 뻗어 생명력을 과시하는 나무를 보지 못했으며, 그 나무를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는 흙더미를 그리고 그 흙이 한데 엉켜 만들어내는 땅 위의 내 연쇄적, 전진적 걸음을 난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난 잔뜩 김이 서린 안경을 쓰고 세상을 봤던 것과 다름 아니다. 이제 흐릿함이 걷힌 또렷한 시야로 걷지 않고 거닐며 세상을 바라본다.

행복을 자아내는 결정적인 요소는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일정한 값의 역치를 채워야 작용이 일어나는 그 자리를 행복이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행복은 자주, 빈번하게, 촘촘하게 발생해야 하는 요소다. 무언가 채워져야 효력이 발생하는 그 자리(행복이란 그릇이 차지하는)를 연장을 들어 잘게 나눈다. 잘게 나누어 그 수효를 무한대에 상응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오늘은 하늘과 나무, 땅과 나의 걸음으로 행복을 빈번하게 채워 넣는다.

시야가 다시 흐려지려 할 때면 언제든 이 글로 돌아와 매번 이 원칙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작가 카잔차키스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끝맺음하려 한다.
"찬란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 순간을 찬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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