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소설을 빙자한 철학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주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저자의 서술이 주를 이룬다. 소설 속 인물들과 짧은 내용의 이야기들은 단지 사랑에 대한 개념을 주석하고자 하는 저자의 도구로 사용된다. 저자는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여러 관점에서 자신만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형배는 사랑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자신에게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과거 선희와의 관계에서 도피했다. 호감이 없는 상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피하는 그의 회피성 태도는 그의 가정사에 근거한다. 부모의 어긋났던 사랑을 목도한 후에 그에게 사랑은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개념으로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힌다. 다시 한번 그는 상대방의 약점을 필사적으로 찾으며 사랑이라는 기생체를 자신에게서 쫓아낸다. 하지만 약 3년 후에 다시 같은 숙주를 찾아온 기생체를 쫓는 데 실패하고, 사랑을 얻는 데도 실패한다. 이 경험을 통해 그리고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순화된 감정을 통해 형배는 한층 더 성숙한 사랑을 경험한다. 그는 이제서야 정면으로 사랑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영석은 매우 방어적이고 늘 사무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온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는 고아나 다름없이 자랐고, 이리저리 옮겨지며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끔 자랐기 때문에 그의 태도는 항상 딱딱하고 굳어져 있다. 우연한 계기로 선희와 연인이 되었고 책에서의 표현처럼 영석은 넝쿨식물이 되어 선희를 점점 타고 올라간다. 그는 그녀를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그녀를 휘감고 집착한다. 처음 해본 사랑이기에, 그의 배경을 통해서는 이런 사랑이 보통 동반될 수 있기에 이러한 미숙한 사랑이 보여질 수는 있어도 선희가 그의 집착적인 사랑을 언제까지고 받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이처럼 선희는 연민이나 덕성에 입각하여 안쓰러운 마음이 향하는 이를 사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양태로서의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 안에 포괄된 전향적 색상의 감정들을 종국에는 다 태워 소진하게 만들 것이다.
준호는 유일하고 영원하며 불변하는 사랑이 이상화된 것은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를 유지하고, 사회를 갈등과 혼란에서 지키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고안된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와 생각이 다르다. 이상화된 사랑이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사랑의 정의가 각각 다르겠지만, 처음의 설렘, 매력, 떨림 등의 감정만이 사랑은 아니다. 권태와 위기를 극복하고 우정을 승화하여 희생이라는 숭고한 행위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사랑이라는 관념에 포함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과 더 가깝다.
각 사람의 생김새나 성격이 모두 다르듯이, 그들이 하는 사랑도 모두 형태나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사랑을 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각 개인이 겪고 있는 '상황'이나 존재하고 있는 '시기'에 따라 사랑은 변할 수 있다.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달라지듯이 사랑관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맞고 틀린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랑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해 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저자를 통해 나도 사랑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성찰해 보았다. 잠시 사랑을 하고 있지 않아도, 통렬히 사랑을 하는 과정 중에 있어도, 또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여기는 순간이 오더라도 난 사랑에 대해 또다시 심도 있게 사유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