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벨이 울렸다. "청옥, 지금 어디 있나요?" 변 화백의 목소리다. 이어서 "한 시간 후, 청옥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요."라고 했다. 직장 친구들은 나를 블로그 별명인 '청옥'이라고 부른다.
변 화백은 입행 동기 모임의 회장이자 화가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화백이라 하면 화려한 백수쯤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개인 전시회는 물론 환경미술대전 작품 공모에서 여러 번 수상한 경력이 있는 화가다.
약속 시간이 되자 그는 그림을 들고 나타났다. 그림은 히말라야 마차푸차레산을 그린 유화로 2007년에 그렸다고 한다. 사진으로 이미 본 적이 있는 그림이다. 그는 히말라야에 가보고 싶었지만 바쁜 생활 때문에 가지 못하고, 대신 동료가 보내준 히말라야 사진을 보고 그렸다. 이 산의 이름은 마차푸차레산(6,993m)이다.
나는 2003년에 외환은행 동료들과 함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트레킹 하면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낸 추억이 있다. 네팔을 다녀온 지 17년이 지난 작년에 히말라야 기행에세이를 쓰고 감회에 젖기도 했다.
10일 동안 네팔 여러 곳을 돌아보았는데, 그중에서 마차푸차레산이 가장 인상적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의 그림은 사진과 거의 구별이 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잘 그렸다고 느꼈다.
이 산은 두 개로 갈라져 있는 봉우리 모습이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네팔어로 '물고기 꼬리'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영어 'Fish Tail'로도 잘 알려졌다. 이 산은 히말라야 유일의 미등정 산으로 유명한데, 1957년 지미 로보트가 이끄는 영국 등반대가 정상 50m 앞까지 등반한 적이 있지만 지금도 네팔 현지 주민들은 이 산을 신성시하기에 등산을 금지하고 있다.
변 화백은 내가 '창작수필' 신인상 공모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 좋은 변 화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해 본다.
1980년 초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외환은행에 입행했다. 당시 외환은행은 대기업과 무역업체를 지원 육성하고 한국의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담당한 국책은행이었다.
그는 일어에 능통하여 대리 시절, 1987년에 오사카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오사카 지점에서 3년 동안 무사히 근무를 마친 후, 본점 연수원에서 교수 등을 지내며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과장 시절에도 역시 동경 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오사카 지점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근무했다. 동경 지점 근무를 마친 후에는 부지점장으로 승진하여 귀국했다.
어느 날, 변 화백은 그림 전시회에서 호박이 돌담 위에 놓여 있는 풍경화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건강을 이유로 마라톤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들이 하나둘씩 쌓였으며 그중에는 마라톤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도 있다.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변 화백은 하루하루가 무척 행복했다고 한다.
2000년, 지점장으로 승진하여 동부본부에 소속된 한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은행원이 바라는 직장 생활의 꽃은 지점장이었다. 대출 수요가 지금보다는 많았던 그 시절에는 영업을 하는데, 큰 애로는 없었다.
변 화백은 순탄한 지점장 생활을 하면서 퇴직 후 살아갈 계획을 늘 마음속으로 그렸다. 휴일에는 부인과 함께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를 차를 몰고, 농사짓기와 전원생활에 적당한 땅을 찾으려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춘천시 강촌의 적당한 크기의 임야와 밭을 2001년 구입하여 은퇴 후 삶의 터전을 미리 마련했다. 그곳은 강촌 기차역에서 춘천 방향으로 약 15분을 차로 달리면 산골짜기 동네에 여남은 채 농가주택이 있는 평화롭고 풍광이 좋은 곳이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꾸준히 그렸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림이 너무 멋지다고 칭찬이 쏟아졌다. 조선일보사가 주최하는 개인 작품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여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림은 자연환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으며, 대한민국 환경미술대전 작품에 두 번 입상했다.
2005년, 강촌에 구입한 산골짜기 땅에 그동안 꿈꾸던 아담한 2층 농가 주택을 지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깊은 산속에 자신만의 낙원이 생겼다는 기분이 들고, 아파트의 화실을 이 농가주택으로 옮겼다. 주말이면 이곳을 찾아 나무를 심고, 주변에 버려진 돌로 꿈의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밭에는 오미자 농장을 만들기로 계획을 세웠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을 행사나 모임에 빠지지 않고 기념품과 약간의 후원금을 수시로 전달했다. 동네 주민들 대부분이 변 화백을 좋아하고 농사에 필요한 정보를 가르쳐 주었으며 따뜻하게 이웃으로 맞아주었다. 그러나 까탈스럽게 구는 주민도 있었지만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2009년에는 30년간을 다니던 은행을 정년퇴직했다. 미리 예측한 인생행로이기에 퇴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계획했던 오미자 농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먼저, 트랙터로 땅을 갈아 오미자 밭을 조성했다. 오미자 농사로 유명한 문경에서 어린 묘목을 구입하여 자식과 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심고 비닐하우스도 힘들게 지었다. 그 옆에는 양계장도 아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진돗개 두 마리를 길렀는데, 족제비와 멧돼지 침범을 막아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서울과 강촌 집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하였는데 농장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예쁜 닭들은 더 많은 알을 낳았으며 서울에서 모임이 있을 때, 달걀과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상추, 고추, 쑥갓, 방울토마토 등을 동료들에게 나눠주었다. 겨울에는 개와 닭에게 물을 주기 위해 농장을 자주 비울 수가 없어 농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을 활용하여 색소폰을 배웠다.
오미자 농사를 지은 지 몇 년이 지난 2015년, 꿈에 그리던 오미자를 대량으로 수확했다. 변 화백은 이를 상품화하였으며 그 대금의 일부는 불우이웃 돕기 등에 기부했다. 한편 그동안 학수고대하던 전기가 집에 들어오게 되자 그간 불편했던 생활이 크게 개선되었다.
어느덧, 강촌의 땅을 구입한 지 20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이제는 오미자 농사가 자리를 잡았고 매년 가을이면 예쁘고 빨간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비옥해진 땅에서 싱싱한 야채와 오이, 토마토 등을 수확하고 있다. 간혹 시간이 날 때 그림을 그리고, 고요한 밤에는 그간 익혔던 색소폰으로 멋진 연주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지낸다. 게다가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직접 농사지은 야채 등을 동료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는 인기 좋은 농부가 되었다.
강촌집 정원누구나 나이가 들면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노후생활을 집에서 보내야 한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은 변 화백의 생활 자세와 그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책에서는 성현이나 철학자들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선배나 동료들의 경험과 산지식을 배우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언제나 밝고 합리적이며, 부지런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변 화백을 생각하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불교 선종(禪宗)의 핵심 사상을 실천하는 구도자(求道者)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색소폰을 불며 생활하는 것이 단순히 부러운 것이 아니라 만족하며 기쁨을 느끼는 그의 행복한 삶이 부러운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이라고 정의한다. 변 화백은 강촌 산골짜기에서 20년을 노력한 결과 현재의 오미자 농장과 아름다운 정원이 생겼고, 농장과 임야에 심은 수 천여 그루의 나무가 숲으로 무성해졌다는 사실이 만족스럽고 기쁘다고 한다.
지금 내 서재에는 수필 등단 축하 선물로 받은 히말라야 마차푸차레산 그림이 기품 있게 걸려 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외환은행 동료들과 히말라야에서 트레킹 했던 옛 추억이 떠오르고 네팔의 전통민요, '레삼 삐리리'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또한 피곤한 하루의 농사일을 마치고 색소폰으로 아일랜드의 포크송 'Danny Boy'를 연주하는 변 화백의 멋진 모습도 눈에 선하다. 앞으로도 변 화백이 가족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인생 2막을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