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와 틱낫한 스님

by 홍만식


지난 12월 어느 날, 서재에서 책을 읽는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악'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급히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더니 아내가 현관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쓰러져 있었다. 아내는 팔목이 부러졌는지 만지지 못하게 하고, 대신, 잣대와 붕대를 찾아보라고 했다. 아내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신발장을 청소하다가 현관 바닥으로 넘어진 것이다.


아내를 간신히 침대에 눕히고, 플라스틱 잣대로 아내의 팔을 고정시킨 다음 압박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즉시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응급실 앞에는 큰 텐트가 쳐 있고, 코로나19 검사받는 사람들이 긴 줄로 있었다. 응급실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어보니 코로나바이러스로 응급실을 폐쇄한다는 내용이기에 할 수없이 삼성서울병원으로 갔다.


아내는 팔목을 수술받고 4일 후, 깁스한 상태로 퇴원했다. 나는 부득이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가 식사 준비보다 더 번거로운 일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세계적 영적 지도자, 틱낫한 스님의 설거지에 대한 다음의 글을 읽어보았다.

'설거지하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설거지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거지를 하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설거지를 하려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이 말은 설거지를 할 때, 오로지 설거지에만 마음이 머물러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끝났을 때의 깨끗함과 해방감만을 생각한다면 마치 성가신 일을 처리하듯이 서둘러 그릇을 씻게 되는 꼴이고, 설거지하는 동안 '지금(now)', '여기(here)'에서 알차게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스님이 강조한 가르침은 결과에 집착하여 소중한 현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과정이 중요하고 결과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사상가나 성직자는 대체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때, 그 순간이 영원한 것이 되고, 그것이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순간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약 1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들이 취직 2차 면접시험을 다녀온 후, 나에게 정답을 물어본 적이 있다. 즉 결과와 과정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말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는 문제다. 아들에게 "너는 어떻게 대답하였지?"라고 반문하였더니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면접은 지식보다 인성과 조직의 적응력 등을 테스트하는 절차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결과에 집착하는 사람보다 조직 적응이 빠르고 인간관계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아들의 대답이 다소 아쉽기도 했지만 논리적인 답변을 했다고 격려해 주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판단하면 과정도 중요하고 결과도 중요하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최선의 노력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수행하는 마음으로 설거지를 한다. 그릇에 남은 찌꺼기를 깨끗이 닦듯이 내 마음에 낀 욕심과 걱정도 깨끗이 씻어 버리고 불교의 진리인 '채움과 비움'을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 양재천에 핀 작은 제비꽃이 눈에 띄고, 박새 소리도 정겹게 들리는 것은 틱낫한 스님의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 덕분인 듯하다.


나는 아내의 손목이 완치되어도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를 하면서 아내를 정성껏 돕고 싶다. 틱낫한 스님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나 물질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말했다. 수련이 뿌리내린 곳은 더러운 진흙탕이지만 연꽃은 늘 맑고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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