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작가들이 외면할 불편한 진실- 보이지 않는 곳에 사람이 있다
브런치에 청각장애인들이 쓰는 글을 보면, 들리지 않아도 마음으로 보고 느낀다라는 류의 미사여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 불행한 것이 아니다"
"장애는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다"
"들리지 않아 비로소 보이는 것들"
"세상의 소음이 멈추고, 마음의 소리가 시작되었다"
"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셨다"
당신은 이 문구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가? 나는 정말로 황망하고 분노가 밀려온다. 나 혼자라도 지워진 청각장애인의 글을 내보이고자 결심하였다.
브런치에서 볼 수 있는 청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원래 청각장애인이 아니었다가 청각장애인이 되신 분이거나
보청기나, 인공와우(인공달팽이관)로 보정이 가능하여 자신의 장애를 숨길 수 있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손실을 가지신 분의 비중이 높다,
이런 분들은 청각장애인이 원래 말을 못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소리를 듣지 못하면 말을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명제가 아니다.
청각장애인이라서, 태어나서 한 번도 음성의사소통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대화의 경험 데이터가 없어 일반인(비장애인)들과 매끄러운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이들은 이런 사실 자체를 모른다.
누구와도 소통을 할 수 없는 막막함을 청각장애인도 모른다. 전화통화 하나 할 수 없어서 아주 쉬운일도 누군가에게 굽신거려 부탁해야 하는 비참함도 이들은 모른다.
현재 청각장애인들은 하나같이 장애 자체를 글의 감동을 더해 줄 양념처럼 다룬다.
"청각장애가 있어서 행복해요"
"장애는 내게 행복을 주게 된 계기"
이는 장애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존재를 지운다.
장애가 있어서 불편하다는 목소리는 행복하다는 말로 부정되어 감히 꺼낼 수 없는 말이 된다.
그러면 청각장애 글을 쓰지 말라는 얘기냐?
아니다.
적어도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짚고자 한다. 누군가가 존재가 지워지는지.
청각장애가 있더라도 완전히 청력을 잃은 것이 아닌 이상,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통해 비장애인 처럼 음성을 듣고 소통하고 전화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국의 청각장애인의 대부분이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없다. 이들의 일생동안 청각장애는 필사적으로 숨겨야 하는 장애였다.
이런 분들이 청각장애 이야기를 쓴다면, 청각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비장애인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청각장애라는 제목이 붙으면 마치 완전히 못 듣는것 처럼 인식하게 된다.
본인이 다른 청각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들려서 가능했던 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삼아 구태여 말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청각장애인의 감동 이야기, 극복 이야기로만 아름답게 포장한다.
정작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여, 한국어를 외국어 처럼 느껴야 한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으로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할머니들에게는 문해교육까지 해주기 까지 하면서,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아무리 소리쳐도 관심 밖이다. 나는 수어 원어민이 아니기에 수어를 쓰는 그들의 진심은 모른다. 단 누군가가 자아 실현을 위해서 목소리를 드높일 수록 존재가 지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록한다.
적어도 여기까지 온 독자라면 비극을 정확히 꿰뚫었으면 바란다.
보이지 않는 곳에 진짜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