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 누구도 청각장애인의 존재를 모른다

숨겨야만 하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말, 청각장애인은 말을 못 해요.


한국의 모든 낯선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사람 만난 듯한 표정을 짓는다.


30년 인생동안 비장애인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비장애인하고만 대화했지만


단 한 번도 상대방으로부터

아, 청각장애인 이세요?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아,

서울에서 중국인이세요?

외국인이세요?라는 말은 몇 번 들어보았다.




청각장애인 아무도 청각장애인이 말을 못 한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은 청각장애인이 말을 못 한다는 것을 모르며


대부분의 청각장애인 조차도

청각장애인이 말을 못 한다는 것을 모른다.

왜 그럴까?


농인은 아예 음성언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입모양을 읽는 것을 할 수 있어도 거부하고

필사적으로 수어만 쓴다.


청각장애인들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청기나 인공와우로 청력보정이 가능한

사람들은 말하는 데에서 장애인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농인수준인데 말을 하는 나만 이상한 청각장애인이 되며 내가 경험하는 것은 다른 청각장애인 아무도 겪지 않는 일이 된다.


청각장애인들조차 청각장애인이 말을 못한 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청각장애인들이 그만큼 잘 숨겼다는 얘기다. 가장 부끄러운 결점인데, 당연히 감추고 지내지 구태여 치부를 드러내고 살지 않는다.


그 숨기고 다니는 정도가 심하면

평소에 보청기 등 보장기기를 안 끼고 다니기도 하며


보청기를 끼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청력손실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한 청각장애인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실제로는 더 많다.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두렵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장애 등록 자체를 안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러 청각장애인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기에, 이들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가장 숨기기 쉬운 장애이기도 하지만,

가장 숨겨야 하는 장애이기도 하다.




나는 발음을 똑바로 못 한다고 30년간 지적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아왔다.


나는 장해(障害)능력 평가를 받으면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정이 나온다.


장해는 산업재해 등으로 다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근로복지공단에서 판정하는 기준이며 보건복지분야에 해당하는 장애인 등급별 등록과는 결이 약간 다르다.


장해는 1~14등급으로 구분할 수 있다. 등급제가 폐지된 장애인과는 더 세부화하여 구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역설적으로 장해등급이 나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정을 받은 나는 일을 전혀 안 해도

국가로부터 연금수령 자격이 있고 기초생활수급자 판정을 받는다.


나는 이런 것을 마다하고 출근하기 싫어도 성실히 회사를 다니면서 일하고 있다. 국가의 시혜로 사는 장애인이 아니라 당당한 노동의 주체로 살며 존엄을 지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나를 비장애인들은 인정해주기는 커녕, 시선을 피하고 눈길도 주지 않으며 말을 똑바로 못 한다고 수근거린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에게는 뒤늦게라도 국가 세금 들여가며 문해교육을 하고 시화전을 열어 잘 썼다고 상장을 주고 문해 축제도 열어줘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한다고 알고 있다.


반면, 말(음성언어)을 모르는 청각장애인은 지적능력에 문제가 있는 지적장애인처럼 대하며


정확하지 않아도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에 대해 발음이 어눌하다고 조롱을 하고


심지어

장애인 때문에 전화를 당겨받는 등

원래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덤터기 썼다며


알게 모르게 눈치를 주며 회사를 나가라고 압박을 주기까지 한다.



일반 비장애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각장애인은

상대적으로 청력사정이 나은 사람들뿐이거나

중도에 청력을 잃은 사람 뿐이라서,


비장애인으로부터 발음이 안 좋다는 이유로

조롱을 당할 일이 없고 차별의 시선에서도 비켜 갈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청각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해도

개인의 노력 부족 아니냐며 조롱한다.

비장애인의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며 열등하다고 여기는 청각장애인을 비난하고 스스로는 안도하는 것이다.


비장애인 회사에서는 눈치를 봐야 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해도 전화는 자기가 알아서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호소해도 외면한다.

비장애인도 아닌,

청각장애인이.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 시각장애인이 노래하는

영상이 올라오면 칭찬만 올라오지만


청각장애인이 노래하면 음치라는 등,

발음이 안 좋다는 등 노래를 그따구로 부르지 마라

온갖 악플이 달린다.

못 믿겠다면, 검색해 보라.



청각장애인 아무도 이런 서러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나 이제

처음으로 이 글을 써서,

모든 서러움을

바위에 새기고자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