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각장애인이지만 그전에 나는 한국어를 하는 한국사람입니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
나와 같은 100데시벨 수준이지만,
인공와우 없이
고난 끝에 음성언어를 배운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을 찾기 위해
농 청년회에 가입하고,
농대연(농아대학생연합회)도 가고,
농인 교회도 갔다.
수어는 느리지만
나와 같이 의사소통하지 못해
설움을 가진 농인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들을 만나
서로를 얼마나 찾았는지
간절히 호소하고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백마 탄 초인을 만나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수어 사용자들은
이미 소통의 간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농청년회를 돈 내면서 가입했지만
대면하여 인사를 건네는 사람조차 없었고
1년동안 연락 없다가
다시 연회비를 또 내라는 문자만 왔다.
농인들은, 초등부터 고등까지
특수학교를 계속 다니면서
같은 친구들만 만나 온
그들만의 끈끈한 관계가 있고
누가 들어가기엔
이미 견고히 굳어졌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내가 평생 갈망한
소통의 결핍이라는 절실함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농인교회에서
그들이 하는 빠른 수어로
따라갈 수 없는 나의 눈은
비장애인 사회에서 빠른 음성 대화를
따라갈 수 없는 귀와
똑같았다.
수어를 천천히 해 달라고 해도
그들은 자기들의 대화가 너무나 재밌어서
빠르게 수어 하기에만 바빴다.
그들의 강한 감정 표현도
한평생 비장애인 사회에서 살아간
나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표정으로 불쾌함을 나타내도
그들은 전혀 자제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들은 말을 하는 청각장애인은
진정한 청각장애인이 아니라고
나를 공격했다.
농대연 싸이월드 카페에서는
매일 진정한 농인의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언쟁이 벌어졌고,
구화인이니 농아인이니
서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날카로운 헐뜯음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마치 나에게
수어를 할 줄 모르면 나가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음성언어를 하는 청각장애인이
수어를 배우려고 하면
농인들은 이를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위협으로 여긴다.
결국 나는 청력 수준으로만 보면
수어를 배워서 농인이 되어야 했지만
아무도 나를 농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나는 수어를 배우고 싶었지만
아직도 수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대학생 때는 수어를 배우고 싶었지만
이제는 별로 능숙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청각장애인만 만나면
한국어를 소리 내서 말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의 존재, 정체성을 부정당한다.
더 이상 나는 농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똥마려운 강아지 처럼 눈치 보며
애쓰는 것은 그만두고자 한다.
앞으로 새로 태어나는
청각장애인 아기들도
전부 다 인공와우를 한다면
자연히 사라지겠지.
고립은,
그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농인들은 인공와우를 하는 것은
수어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면 수어만 써도 노력만 하면
한국사회에서 정, 재계 진출 및 법조계, 의료계 등
속된 말로 상류층으로 인정받는 계급으로
진출할 수 있는 사다리가 있어야 하고,
그 반석 위에 실제로 올라간
농인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있다고 할 수 있나?
그런 것이 없으니
의사들도 인공와우 하세요, 언어치료 하세요
하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인공와우가 싫으면,
단적으로 말해
수어만 쓰고 살더라도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꾸릴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농아인 협회는 43만 명 청각장애인을 대표해서
유일하게 정부 예산을 타 가고 있으면서도
낯선 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한
청각장애인도 일반적인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인식 개선하고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각 지자체마다 있는
200개가 넘는 수어통역센터는
전체 청각장애인의 3%내외인
수어 사용자들에게만 통역을 하고
나머지 청각장애인들의 통역은 거부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청각장애인 단체나 협회가
생기려고 하면 반대시위를 한다.
이 모순을 누군가가 짚으려고 하면,
우리들은 약자다! 차별말라!
라는 논리로 모든것을 무력화시켜
논의를 제기한 사람을 파렴치한 사람으로 만든다.
대표성에 따른 책임을 협회가 스스로 부정하면서
오늘도 많은 청각장애인들의
존재가 잊히고 있다.
농인들은 농인으로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비장애인이 보는 유튜브나
언론 인터뷰에서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면 농인들은 왜
말하는 청각장애인에 대해
진정한 청각장애인이 아니라고 공격하는가.
정말 행복하다면,
수어를 더 널리 쓰고자 하기 위해
농인이 아닌 청각장애인에게도
적극 수어를 알리는 게 맞지 않나.
비장애인에게는
"모두가 수어를 아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수어통역사가 어디든 있었으면"
라고 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나에게는
"너는 농인이 아니야. 장애인 흉내를 내지 마라"
라고 나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험악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한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모두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보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의미를 찾는다.
이렇게
나는 이제 비장애인 사회도,
청각장애인 사회도,
농인 사회도
어디로도 갈 수가 없는
대양에서 부유하는 흰 돛단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