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서 연구자로의 전환

(3)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

by eune

종류를 불문하고, 첫 경험은 특별한 것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의 의미를 더 30대에 들어서서, 더 이상은 젊다고만 볼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실감한다.




직장을 그만둘 시점에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쉼 없이 쏟아지는 프로젝트에,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뒤로 쭉 밀려버리는 마일스톤에, 늘 숙지해야 되는 업데이트되는 규정에, 믿고 맡겨주시는 팀장님에 더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번아웃었던 것 같다.


도피성으로 관둔 직장은 아니었지만, 그만둘 시점에는 이상 새로울 게 없었다.

일은 익숙하고, 늘 보는 사람은 고정적이며, 내게 기대되는 역할도 늘 비슷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틀에 맞춰진 톱니바퀴의 부품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별다른 취미가 없어서, 일에서 의미를 찾는 내게 이 일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중요하다.

물론 번아웃도 퇴사의 원인 중 하나였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아니었다.


2020년 팬데믹 시기를 기억하는가.

무엇에 홀린 것처럼 전 세계가 백신 개발에만 몰두하던 그 시절에 임상시험 업계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터르키기 매독 생체 실험,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배운 나는, 의료진으로서 지켜야 할 의료 윤리가 마음속에서 박살 나는 경험을 했다.


왜 아직 안전하다고 입증되지 않은 약을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해야 하는가.

왜 안전하다고 입증된 약을 치료제로 쓰는 방안은 무시되는가.


사람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고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첨예한 갈등 속에서 혼란스러웠다.

업계 사람들조차도 모두 혼란스러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내가 하는 일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마음에 불신이 들기 시작한다. 돈을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스폰서에, 윤리를 덮어놓고 실적을 찬양하는 회사에 마음이 뜨기 시작한다.


결국 1년을 더 버티다가 맘 붙일 곳을 찾기 위해 떠나왔다. 나는 잘 몰랐지만, 퇴사 1년 전부터 집에서 늦게까지 노트북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내 얼굴에 정말 하기 싫어 죽겠다는 마음이 엿보였다고 친언니가 말해주더랬다.




투쟁과도 같은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도 내가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이다.


경력도 많고, LLM이라는 나름 핫했던 분야를 연구했던 내게, 후배들과 교수님들이 왜 아직도 연구실에 남아있냐는 의문 어린 시선을 던지곤 한다.


물론 임상시험과 LLM이라는 두 키워드를 동시에 가진 회사가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정작 생긴다고 하더라도 병원만큼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는 집단은 없는 것 같다.


의정 사태로 말이 많지만, 천룡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얼핏 보면 거만해 보이지만, 현장에서 뛰는 의사들을 보면 천성까지 나쁜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더 나은 진료 현장을 꿈꾸며 환자를 살리고자 다방면으로 고민한다. 겉으로 까칠하던, 상냥하던, 무뚝뚝하던, 겉으로 어떻게 변했건 간에 순수했던 핵심 알맹이는 고스란히 빛나 눈빛에 묻어 나온다.


AI가 의료인들을 지식적인 측면에서 대체할 수는 있겠으나, 대학과 의료 현장에서 체화된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은 절대 따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AI의 판단에는 의료인의 최종 결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새로운 공부는 나름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변태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트랜스포머 모델의 구조는 영화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와 같이, 척척 변신하여 줄줄이 글을 읊어내고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 내는 만능 로봇처럼 느껴졌다.


레이어의 노드가 작동되는 동작 원리가 사람 뇌의 신경회로를 닮아있다. 간호학생 때 배웠던 지식이 살아나며 AI의 작동원리가 사람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창작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던 언니의 말처럼, 우리 인간의 본성이 사람을 닮은 AI를 빚어내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학생 때 지겹게만 느껴지던 미적분이, 너무 급하게 배우느라 차마 공부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기하와 벡터가 이제야 어떻게 적용되는지 깨닫는다.


세미나를 들을 때도 AI가 추론하는 과정을 탐구해 나가는 주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집중한다. 석사 때 부족했던 공부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너리즘에 잠들어 있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고 얼굴에는 활기가 돈다.


확 줄어든 연봉에, 부모님의 염려 어린 시선에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될 때 내 마음에 대고 묻는다.


지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인가



돈이 최종 목표가 되지 말자고, 경력을 다 때려치우고 새 길을 도전했던 2년 전의 마음가짐을 떠올려보면 아직은 연구실이 답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 많은 늦깎이 대학원생으로서 불안한 점은 많지만 우리 연구실이 소속된 병원은 아직도 많은 외부인력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도 아직은 그중 한 명으로써 일하고 싶다.


- 2025. 07. 10. 늦게까지 코드 돌리다 막차 놓쳐 택시 타고 들어간 다음 날 아침, 구멍 난 통장에 눈물 흘리며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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