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펜서>를 보고.
<스펜서>
2022. 3. 16 개봉영화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이 사진들 위로 SZA의 <Open Arms> 라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는 게시물을 보게 됐다. 보자마자는 뭔지 잘 몰랐다. 처음 듣는 이 노래는 어딘가 모르게 외로운 멜로디였고 망망대해 위 다이빙대 끝자락에 홀로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 듯한 사진 속 저 금발머리 여자는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었다. 잠깐동안 이 게시물에 머물러 음악과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봤고 아래 캡션을 열어 이 사진 속의 주인공과 음악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었을 땐 묵혀뒀던 영화 <스펜서>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 <스펜서>는 영국 엘리자베스 왕족의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야기이다. <스펜서>가 실화라는 건 알았지만 그 주인공이 다이애나 스펜서인지는 몰랐다. 나중에 꼭 봐야지 하고 찜해두기만 했지 자세한 정보는 모른 채 차일피일 보기를 미뤘던 영화였다. 왕족 다이애나 스펜서 이야기라는 걸 먼저 알았어도 사실, 서둘러 보진 않았을 것 같다. 꼭 봐야겠다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저 게시물 때문이다.
왕족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고 여자인 다이애나 스펜서가 생전에 느꼈을 불안함과 외로움들이 저 사진 한 장에 모두 담겨있는 듯했고 순식간에 스펜서의 삶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SZA의 SOS 앨범 커버는 다이애나 스펜서의 파파라치 사진을 오마주 했으며 그 앨범의 수록된 <Open Arms>라는 곡은 스펜서의 외로움을 담은, SZA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다이애나 스펜서의 남편인 엘리자베스 2세의 장남 찰스 3세는 다이애나 스펜서를 두고 결혼 전부터 수년간 다른 여자를 만났으며 안 그래도 녹록지 않았던 왕족의 삶에 남편의 외도까지 더해 다이애나 스펜서로 하여금 더욱더 깊은 외로움 속으로 고립시키고 말았다.
영화 <스펜서>는 왕실의 배경설명이나 왕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복잡한 사건들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다이애나 스펜서의 감정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화려한 왕실 안에 놓인 스펜서의 외로움과 슬픔이 대비되어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가까이 전달되는 영화이다.
다이애나 스펜서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눈빛은 종일 불안했다. 아마도 실제 스펜서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누구든 그녀를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하면 마치 목에 두르고 있는 저 진주 목걸이처럼 굵은 눈물방울을 금방이라도 또르륵 흘려버릴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왕실 가족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그녀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꿈틀거리다 이내 목걸이를 잡아당겨 끊어버리고는 수프 위로 떨어진 진주들을 숟가락으로 떠 입속으로 마구 집어넣는다. 스펜서의 괴로움을 보여준 영화적 표현이었지만 마치 스펜서 자신의 눈물을 억지로 삼키는 듯했다.
결혼 후 찰스 3세와 그녀 사이에 첫째 아들이 태어났고 그 후 찰스 3세는 둘째로는 딸을 원했지만 또 아들이 생겨 차남 해리는 장남 윌리엄에 비해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왕실을 이을 장남은 윌리엄 하나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굳이 아들이 하나 더 있을 필요는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배경만 왕실일 뿐 다똑같..
남편 찰스 3세의 멈출 줄 모르는 수년간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는 방관하며 스펜서더러 입을 다물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수년간 이어진 남편의 외도를 참아왔던 것이다. 온갖 스트레스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정신에 거식증과 폭식증을 앓았던 스펜서는 그런 와중에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파파라치들에게서 또한 자유롭지 못했으며 망망대해 위에 홀로 앉아있는 저 사진들 역시 그녀의 사망 10일 전 파파라치에 의해 찍힌 마지막 사진들이었다고 한다.
홀린듯 주문한 책 <스페어>. 다행히 마이클 조던 평전보다는 살짝 얇고 가벼워서.. 금방 읽을 것 같다. 왕실 속 본인은 항상 두 번째 였다는, 스스로를 예비용(spare)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삶들에 대해, 어머니 다이애나 스펜서에 대해 그리고 왕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차남 해리 윈저의 자서전.
넷플릭스 다큐 <프린세스 다이애나>, 드라마 <더 크라운> 도 곧 정주행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