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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우리는 다 미생이야 !

by 이봄


‘꼰대’라는 단어에 따라오는 대표적인 이미지엔 뭐가 있을까? 살짝 부족한 머리숱에 반듯한 안경, 멀끔한 정장 차림을 한 부장님? 덤으로 올챙이배까지. 보통은 남자 어른을 떠올리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부딪히며 지내는지에 따라 꼰대의 정의가 다를 수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대부분 꼰대 캐릭터로 남자 어른을 다룬다. 어쩌다 꼰대가 되는 것일까? 아니 꼰대란 대체 무엇일까? 드라마 <미생>에 푹 빠져 두 번째 보던 때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부장 연기를 하랬더니
진짜 부장을 데려다 놨네.


읽자마자 빵 터졌다. 극 중 마 부장 역할의 손종학 배우의 연기는 연기인 줄 알면서도 정말 화가 났다. <꼰대 인턴>이라는 드라마는 제목에도 대놓고 꼰대라 쓰여 있고 그 주인공은 역시나 남자 어른. 묻고 더블로 가는 법을 가르쳐주신 김응수 배우와 꼰대 위에 젊은 꼰대 박해진 배우이다. 왜 남자 어른들만 꼰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을까?





나도 아저씨들이라면 무조건 다 꼰대라며 치부하곤 했다. 중 고등학생들은 그냥 갓난쟁이들로 보고 20대 중 후반이 되어도 마냥 어린애들로 보는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사람들의 말이라면 애초에 들으려 하지 않는다거나 어린 네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 내 생각이 옳다, 내 말이 다 맞다는 뉘앙스의 대화법을 하도 많이 겪은 탓에 어른들과의 대화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상황엔 잘 듣는 척하느라 애먹은 적도 있다. 너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 내 말이 곧 법이요 진리이거늘 그러니 잘 새겨듣거라 하며 묻지도 않은 자기자랑과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살기 편해졌어~“

”나 때는~ 우리 때는~ 예전에는~“

어느 날 커피 광고에도 등장한 '라떼는 말이야'






이처럼 상대의 말을 먼저 잘 들어주고 이해하기보다 나서서 다 아는 체하고 싶고 설명하고 싶고 난 너보다 먼저 산 어른이니까 내 경험이 다 맞다는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놓고 우리는 꼰대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어른들 대부분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 탓에 꼰대 이꼴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상식 과장님 너무 좋아요.
부들부들 꼰대 그 자체 마부장.


<미생> 최고.




근데 서른이 넘어보니 꼭 부모님 세대만 놓고 꼰대라고 하긴 애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불문하고 직장 동료나 친한 친구에게 혹은 한두 살 차이 나는 고만고만한 사이끼리도 충분히 서로에게 꼰대가 될 수 있다. 요즘 세대 꼰대는 젊꼰이라고 하는데 그 젊꼰 대열에 나도 포함된다는 걸 느낀 순간 아차 싶었다.



나에겐 일곱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7년이면 꽤 큰 터울이다. 내가 막 초등학교 입학할 때 남동생은 돌이 막 지난 갓난아이였고 교복을 벗어던지기 직전인 고등학교 3학년 19살 때는 아직 교복도 못 입어 본 12살 초등학교 5학년인 것이다. 나도 꼰대인가 의심이 들었던 순간은 남동생을 대하는 나의 모습에서였다.



내가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코찔찔이 었던 남동생은 스무 살이 넘어 군필자가 되고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첫째들이 다 그렇듯 동생이 몇 살 먹었든 간에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덩치만 컸지 이제 갓 성인이 된 20대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며 동생에게 가르치려 하는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은 나에게도 있었다.


‘알아도 모른 척하는 게 맞다‘

‘하나하나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나 자신이나 잘할 것이지 나는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처럼, 20대 후반이 또 알면 얼마나 안다고 모든 것을 다 통달한 사람처럼 허세를 부렸다. 그것도 동생한테. 참 부끄러운 짓이다. 지혜는 말로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내가 듣기 싫은 말은 타인도 똑같이 듣기 싫은 말이다. 동생에게 한 것처럼 겉으론 표시 낼 수 없었지만 가끔은 지인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랬던 나 자신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겸손하지 못한 모습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인 것이라고. 그리고 너 꼰대 맞다고.



내가 동생을 대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동생일 때 나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선배들도 물론 있다.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가르침을 받는 주입식 교육의 시대에서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그런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동생이 마흔이 되든 쉰이 되든 마냥 어리게만 보일 것 같은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나 같은 젊꼰도 존재하듯 꼰대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나이대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내가 옳은냥 살아가는 오만한 태도와 굳은살처럼 박혀버린 고집이 나 스스로를 꼰대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꼰대는 무조건 어른들! 이라고 선을 긋는 것은 윗세대들에겐 좀 억울한 일이다.







시간이 흘러 시대가 많이 바뀌면서 윗세대의 경험이 요즘 세대 사람들에게 맞춰지긴 물론 어렵다. 과거 경험들에 의존하기엔 지금도 계속해서 시대는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10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장래희망란에 '유투버'가 적힐 것이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앞으로 세상이 얼마나 더 크리에이티브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너무 다른 세대가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인 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허무할 수 있겠지만 결론은, 서로 이해해 주려 노력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가 많은 꼰대든 젊은 꼰대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야 조화롭게 지낼 수 있다. 네이버에 꼰대를 검색해 보다가 알게 된 <얀테의 법칙>을 소개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덴마크를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 북유럽에서 통용되는 덕목으로 '보통사람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것인데 얀테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마을은 '잘난 사람'은 대우받지 못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 마을에 있는 10가지로 구성된 규칙이 바로 <얀테의 법칙>이다.






1.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2.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3.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4.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5.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6.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7.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아라.

9.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10.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우리 모두 꼰대를 탈피해 보자. latte is H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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