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베베 Aug 13. 2023

5,6,7월 연구생 일기


오지게 쉬고 오지게 놀았습니다.

공부하러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이제 슬슬 해볼까 하고 각 잡고 앉아서 보니 그동안 쓴 게 전혀 없네.

 

이제 좀 레귤러 하게 만나야 하지 않겠니? 매달 말에 와라

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5월 중순인데 당연히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함.



5월에는 학과에서 논문작성 세미나를 지원해 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열심히 학교에 나갔다.

박사졸업 선배님이 봐주셨는데, 내 주제가 굉장히 낯설으셨을 텐데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코멘트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걱정하시더니 3주 만에 나랑 토론을 하실 만큼 내 주제를 파악하시고 핵심을 짚으셔서 놀랐음. 나는 4년을 붙잡고 있었던 건데?? 이때 완성했던 개요문을 교수님께 드렸어야 했다. 그땐 내가 이렇게 까지 팽팽 놀아버릴 줄 몰랐지.


  


6월에는 진짜 뭘 했더라... 일을 많이 했고, 공연을 많이 봤다.

5.4 연극 <벚꽃동산>

5.17 연극 <폭풍의 언덕>

5.23 뮤지컬 <SIX>

5.24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6.2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6.8 연극 <우리 교실>

6.15 연극 <리어왕>

7.9 연극 <결투>

7.13 뮤지컬 <트레이스 유>

정리해놓고 보니 6월에만 많이 본건 아니네. 본 것들 중에서는 <우리 교실>, <결투>가 좋았다. 전자는 파토스, 후자는 로고스. 관악극회 프로덕션 <리어왕>에 대해서는 할 말이 굉장히 많은데, 이거 쓰다간 오늘 공부도 종 칠 것 같으니 생략.  아, 오래간만에 영화관도 갔다. <엘리멘탈>을 봤는데 살짝 실망스러웠어. 지난 4년여간 정말이지 공연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아예 관람을 끊어버렸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나 보다. 이로써 나의 '공연못봄병'은 번아웃으로 인한 인지능력 및 집중력 저하 때문이었음이 판명되었고, 드디어 쾌차했다. 노느니 공연이라도 열심히 봐두자 해서 본 건데, 공연 관람이 이번 내 논문에 직접 도움은 안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네. 그래도 언젠간 자양분이 되겠지. 구슬 모으는 게 내 취미니까. 모아두면 언젠가는 꿰어낸다!

난생처음 호캉스도 다녀왔다. 졸업하기 전까진 아무래도 여행은 못 가니 분위기나 내자하고 집에서 45분 거리호텔로ㅎㅎ 체크인해 놓고 일하고 다시 들어가는 바람에 온전히 휴가 기분은 못 냈지만 그래도 꽤 기분전환이 되었다. 입 짧은 엄마가 조식뷔페에서 열빙어를 왕창 드시는 걸 보고 뿌듯했음. 1년에 한두 번씩은 다녀야겠다. 이렇게 쉬운걸.



7월부터는 진짜 좀 해보자 하고 맘을 먹었는데 일주일 만에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오죽 아팠으면 일어나자마자 눈도 못 뜨고 병원에 갔겠어. 코로나 때도 통증이 사흘을 넘기진 않았는데, 이 감기는 진짜 질긴 놈이어서 일주일을 내리 쉬었다. 잔기침까지 해서 팔월 초까지 한 달은 앓았나 보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 내 7월 누가 뺏어감?



그리고 8월이 되었다.

논문제출기한을 초과해서 연장서를 냈는데 6학점 추가에 등록금도 내야 한다는 건 몰랐지. 공부 시작한 이래 첨으로 도망갈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근데 다행히도 나는 제출기한 초과자가 아니라 제출기한 연장대상자라서 수업이수+등록금은 해당 없다고. 이제 연장을 해서 2년을 벌었고, 그 2년마저 초과하면 수업이수+등록금, 이런 코스인 것 같다. 살았다. 그렇게 지옥과 천당 사이에서 울다가 교수님께 연락을 받았다. 쓴 거 가지고 다음 주에 오라고 하신다. 세상에, 생전 간섭 안 하시고 잔소리 안 하시는 교수님께서! 알아서 잘하겠거니 뒀는데 이렇게까지 망나니같이 굴 줄은 모르셨겠지요...

14일 월요일 안에는 무조건 개요문을 교수님께 제출할 것! 그리고 남은 보름간 논문을 완성할 것! 하룻밤새 만리장성을 걷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계획이지만, 근자감이 샘솟는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이미 한 것 같은 기분이야. 나도 내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 이상한 상태의 8월 13일이다.





천재는 아니지만 나는 능히 해낼 것이고 끝까지 살아남을 거야!

작가의 이전글 Q. 이젠 공연의 가치를 모르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