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1

2025년의 봄과 여름

by 아리타




# 누추한 제 이야기를 구독해 주신 11분의 구독자분들께 글을 립니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일상을 기록한 것이 지난 2월 말이니까, 그야말로 봄과 여름 두 계절이 지나갔다. 9월 12일인 오늘도 조금 걷고 나니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래도 계절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싶다.


지난봄은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잔인했다. 지난 기록에서 언급했던 12월 말부터 해결되지 않던 그 일, 박사 진학 문제가 결국 해결되지 않았다. 살면서 겪어본 아마도 첫 번째 '실패'이거나 가장 큰 실패가 아닐까.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건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일이 아니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진학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죽으라고 절벽에서 떠밀린 것만 같았다. 한때는 촉망과 기대를 받던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지금 그걸 생각해 봐야 무엇하겠는가.


나는 어떻게든 살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5월 말엽부터 불안과 공포가 신체 증상으로도 나타나서 바로 정신과에 갔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심리 상담도 등록했다. 상담은 학부를 졸업할 무렵에 반년정도 받다가 이런저런 큰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원치 않는 종결을 한 후 두 번째였다. 교통편을 이용해 어딜 갈 만한 컨디션이 아니어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집 근처 상담소에 등록을 했다. 상담은 총 8회기. 이전의 상담에서 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가는데만 서너 달이 걸렸던 것 같은데 8회기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예상외로 빠르고 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유는 (1) 문제가 무엇인지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었고 (2) 우울감 같은 기능적 문제라기보다, 울화 같은 감정적 문제였으며 (3) 무엇보다 상황을 타개하려는 내 의지가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박사 진학을 포기하기로 한 후에 나는 내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바로 엄마의 상심을 달래주어야만 했다. 나는 괜찮다고, 어떻게 보면 더 잘된 일이라고 머리에도 마음에도 없는 말로 엄마를 위로해야만 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내 감정을 받아들이고 정리할 충분한 시간과 위로, 응원이었던 것 같다. 상담에서 바로 그러한 것을 정확히 채울 수 있었다. 상담을 등록하기 전에는 일이 생기자마자 바로 누군가를 찾아 징징대려는 건 많이 나약한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대처를 한 것 같다. 그 결과 평생 지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일을 이제는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었고 훨씬 덜 아프게 되었다. 이번 상담의 부수적인 성과는 첫 상담 때 찾아낸 나의 문제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생긴 사건도 결국 파내려 가다 보면 그때 그 문제에 닿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는데, 그렇게 깊이 내려갈 필요도 없었다. 넘어져서 살갗에 생긴 상처같이 얕은 것이었다.


마지막 면담에서 지도교수는 내가 학교를 오래 다니다 보니 항상성 같은 게 생긴 거라고. 그런 비슷한 얘길 했다. 그 말을 포함해 그날 내게 했던 모든 말들이 다 옳았다는 것을 두 계절을 보내고 난 지금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고맙다거나 하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내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가 나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살고자 발버둥 친 끝에 내가 깨달은 것이다.



대학원에 다니던 나는 나이에 비해 아주 많이 순진했고, 앞만 보며 너무 열심히 내달렸다는 것.


이 잔인한 봄과 여름을 온몸으로 보내며 내가 체득한 교훈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 일들을 다 끄집어내어 글로 다 풀어내어야만 이 들끓는 감정과 날뛰는 상념들이 정리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구독자가 11명이 되었다는 알람을 듣고 이제야 노트북을 켰다. 겨우 반년만에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다니. 대견하다. 그래서 이 일은 이 정도로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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