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와 "에어팟 낀 후배" 사이, 집게를 든 나의 고군분투
대한민국에서 1981년에 태어났다는 건, 인류 역사상 가장 다채로운 과도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다는 뜻이다. 우리는 삐삐로 숫자를 주고받으며 설레어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세대다. 아날로그의 낭만을 기억하면서 디지털의 비정함에 적응해야 했던 우리는, 이제 조직에서도 가장 기묘한 위치에 서 있다. 바로 '낀 세대'다.
위에서는 누르고 아래에서는 치고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고기를 구웠다. 내 위 상사들은 여전히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무용담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고, 내 옆의 신입 사원은 당당하게 에어팟 한쪽을 끼고 "저는 회식보다 개인 시간이 더 중요해서요"라며 1차만 마치고 사라졌다.
그 사이에서 나는 집게를 든 채 잡생각에 빠졌다. 상사에게는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맞장구를 쳐줘야 하고, 후배에게는 '쿨한 선배' 코스프레를 하며 눈치를 봐야 한다. 불평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나는 '꼰대'가 되고, 참는 순간 '호구'가 된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81년생이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불평은 사실, 나를 지키려는 몸부림
누군가는 묻는다. "그냥 중간만 가세요.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요?" 하지만 그 '중간'이라는 게 81년생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상사의 비합리적인 지시에는 속이 뒤집히고, 후배의 지나친 개인주의에는 당혹감을 느낀다. 이 양방향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불평'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나의 이 까칠한 불평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무색무취의 존재로 사라지지 않겠다는, 나만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다. 조직의 부품으로 소모되기도 싫고, 그렇다고 무책임한 개인으로 남고 싶지도 않은 81년생의 고군분투인 셈이다.
낀 세대라는 이름의 완충지대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낀 세대라는 건, 세상을 연결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날로그의 따뜻함을 알기에 후배의 차가움을 다독일 수 있고, 디지털의 속도를 이해하기에 선배의 뒤처짐을 도울 수 있다. 비록 머릿속은 수만 가지 잡생각과 불만으로 가득할지라도, 이 혼란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오늘도 나는 상사의 잔소리와 후배의 무심함 사이에서 조용히 불평 한 모금을 삼킨다. 그리고 다짐한다. 적어도 나는 '어쩔 수 없지'라며 무뎌지는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삐딱한 시선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이야말로, 이 삭막한 낀 세대의 삶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연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