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가물가물한데 온도만은 선명한, 이름 모를 당신에게 보내는 뒤늦은
가끔 채널을 돌리다 앳된 얼굴의 전지현과 차태현이 보이면 손가락이 멈춘다. 세상이 온통 신승훈의 'I Believe'로 물들었던 그 무렵,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함께 봤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다. 스크린 속 그녀는 여전히 명랑하고 엽기적인데, 화면 밖의 나는 어느덧 그때의 견우보다 훨씬 나이를 먹어버린 어른이 되어 있다.
얼굴은 흐릿해도 공기만큼은 선명한 역설
신기한 일이다. 이제는 네 눈매가 어땠는지, 웃을 때 입꼬리가 어느 쪽으로 올라갔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이름 석 자를 떠올리려 해도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만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특정 장면이 나오면 그날의 공기, 극장 안의 냄새, 옆자리에서 느껴지던 조심스러운 온기만큼은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기억은 참 이기적이다. 전체적인 형체는 다 지워버리고선, 가장 예민한 감각만 골라 박제해 둔다. 지금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누구의 아내가 되었는지, 아이는 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지금의 '너'가 아니라, 그 영화를 보며 설레하던 '그때의 나'니까.
보고 싶은 건지, 미련인 건지 알 수 없는 감정
영화 속 견우는 타임캡슐을 묻으며 재회를 약속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타임캡슐 대신 연락처를 지웠고 기억을 덮었다. 가끔 마음 한쪽이 이상해지는 건 아직 못다 한 말이 남아서일까, 아니면 그 시절의 순수함이 그리워서일까. 사실 이제 와서 너를 다시 보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확률이 높겠지. 세월은 우리의 얼굴을 바꿔놓았고, 각자의 삶은 너무도 다른 궤도를 그려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만 보면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는 건, 우리가 나누었던 그 짧은 '첫날'의 온기가 내 생애 가장 순수했던 조각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거다.
효율을 따지는 세상에서 지켜낸 비효율적인 감상
무엇이든 빠르게 처리하고 잊어야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세상이다. 이미 끝난 인연에 마음을 쓰는 건 비효율적인 낭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채널을 돌리지 못한 채 멍하니 화면을 응시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믿었는데, 영화 한 편에 무너지는 마음을 보면 기억이란 참 질기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의 현재를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과거의 한 페이지를 공유하는 일이다. 얼굴도 이름도 흐릿해졌지만, 영화의 선율 속에 박힌 그날의 기억만은 내 안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지금쯤 너는 어디서 어떤 노을을 보고 있을까. 네 기억 속에도 그날의 영화관은 어떤 색으로 칠해져 있을까.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유일한 유산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라는 걸 잘 안다. 알 수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결국 남는 건 '함께 영화를 봤다'는 단 하나의 문장뿐이다. 그 문장 하나가 마흔 중반을 지나는 나의 메마른 일상을 가끔 촉촉하게 적셔준다.
보고 싶다는 거창한 말 대신, 그저 그 시절 우리가 참 예뻤노라고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네가 어디에 있든, 그날 우리가 함께 웃었던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영화 속에 박제되어 빛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