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염색약 뒤로 숨지 않기로 했다
어느 날 아침, 거울 속에서 낯선 불청객을 마주했다. 조명 아래 유난히 반짝이며 자기 존재감을 뽐내는 그것, 바로 흰머리다. 81년생, 마흔 중반의 궤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이 노골적인 신호 앞에서 나는 잠시 칫솔을 멈췄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능숙하게 '검은색'으로 덮어버리는 위장술을 권하지만, 내 머릿속은 벌써 특유의 잡생각과 불평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되어야 할까
주변을 둘러보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칠흑 같은 검은 머리를 고수한다. "염색 안 해? 훨씬 젊어 보일 텐데."라는 조언은 애정 어린 걱정의 탈을 쓴 압박이다. 나는 여기서 첫 번째 불평을 터뜨린다. 왜 마흔 중반의 어른은 반드시 '젊어 보여야'만 하는가? 흰머리를 가리는 행위가 마치 삶의 연륜을 부끄러워하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사회는 '관리하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검은색 염색약을 건넨다. 하지만 그 속에는 늙음을 도태로, 변화를 결점으로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담겨 있다. 나는 이 획일적인 기준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내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가는 것 또한 내가 가진 '다양성'의 한 조각인데, 왜 우리는 그것을 기어코 지워내려 안달일까.
81년생의 잡생각이 빚어낸 흰머리라는 기록
사실 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들은 지난 40여 년간 내가 치열하게 겪어온 사유의 흔적이다. 낀 세대로서 상사와 후배 사이에서 삼켰던 수만 가지 잡생각, 세상의 부조리를 보며 투덜댔던 날카로운 불평들, 그리고 나답게 살기 위해 고민했던 밤들이 모여 이 색깔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검은색 염색약으로 이 기록들을 덮어버리는 건, 어쩌면 내가 통과해 온 시간의 깊이를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남들이 정해놓은 '정상적인 어른'의 범주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 조금은 까칠하고 예민해 보일지라도 내 몸이 써 내려가는 자연스러운 서사를 그대로 두고 싶다.
무채색 일상 속에서 발견한 나만의 색깔
나는 이제 검은색 염색약을 내려놓으려 한다. 대신 거울 속의 흰머리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건 내가 세상을 관찰하며 얻은 훈장이다."라고. 모두가 똑같은 검은색으로 머리를 물들일 때, 나는 나만의 은빛 스펙트럼을 가진 '81년생 괴짜'로 남는 쪽을 택하겠다.
진정한 나다움은 결점을 가리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는 데서 온다. 세상이 말하는 '평온하고 말끔한 어른'은 아닐지라도, 내 머리카락 한 올에 담긴 고집스러운 철학을 사랑하는 '살아있는 작가'이고 싶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매만지며 다짐한다. 나는 나답게, 이 하얀 변화와 함께 우아하게 늙어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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