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 여전히 '어른'이라는 배역이 어색하다

81년생 철부지의 고백, 철드는 법은 배웠지만 써먹고 싶지 않은 마음

by Vague Memory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81'로 시작한다는 건, 사회적으로 '중견' 혹은 '완숙'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야 하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겉모습은 제법 그럴싸한 외피를 둘렀고, 남들 앞에서는 능숙하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격식 있는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나는 다시 열다섯 살 철부지로 돌아간다.


어른 코스프레라는 고된 노동

​나의 하루는 '어른 코스프레'의 연속이다. 회사에서는 후배들에게 그럴듯한 조언을 건네고, 집에서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내 속마음은 여전히 "왜 나만 참아야 해?"라며 투덜대고, 맛있는 반찬 앞에서 젓가락을 먼저 뻗고 싶은 유치한 욕망과 싸운다.


​우리는 철드는 법을 너무 일찍, 그리고 강제로 배웠다. 81년생인 우리 세대는 '생존'과 '책임'이라는 단어를 학습하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발산하지 못한 장난기가 억눌려 있다. 가끔은 아무런 이유 없이 투정 부리고 싶고, 책임감 따위는 던져버린 채 하루 종일 실없는 공상에만 빠져 있고 싶다. 하지만 '나잇값'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자꾸만 등을 떠민다.


꼭 모두와 같은 속도로 걸어야 할까

​남들이 부동산 시세와 주식 차트에 목을 맬 때, 나는 새로 나온 가젯에 눈독을 들이고 만화책 한 권의 다음 권을 기다리며 설레한다. 누군가는 철없다고 혀를 차겠지만, 나는 이 유치함이 세상을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바라보게 해 준다고 믿는다. 모든 것을 심각하고 비장하게 받아들이는 '진짜 어른들' 사이에서, 사소한 것에 열광하고 투덜대는 내 모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잡생각들을 정리하며 깨닫는다. 내가 진짜 두려운 건 늙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정해놓은 매뉴얼에 맞춰 나의 호기심과 천진난만함이 거세되는 것이다. 흰머리는 늘어가고 주름은 깊어지겠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신발 끈이 풀린 채 동네 어귀를 뛰어다니는 소년이 살고 있다.


철들지 않은 채로 안녕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완벽한 어른이 되기를 포기한다. 적당히 투덜대고, 적당히 철딱서니 없는 모습으로 이 삭막한 세상을 유쾌하게 건너가려 한다. 굳이 남들이 말하는 정답에 나를 끼워 맞출 필요가 있을까.


​나는 여전히 철부지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꺼이 그렇게, 나만의 보폭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