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시간

70대 "마지막 행복, 늦은 꽃 피움"

by 한시을

16화 새로운 터전에서의 출발


안동 시장 골목에 벚꽃 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2015년 4월, 73세의 어머니는 평생을 보낸 이 터전을 정리하며 복잡한 심경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고 있었지만, 골목상권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경제 정책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홀로 꾸려온 안동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대구에서 자식들과 손주들 곁에서 보낼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꽃 피고 새 우는 계절에 시작된 이 새로운 출발은 어머니에게 인생의 마지막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었다.


2012년부터 한국 사회는 정치적 격변과 경제적 도전 속에서도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고, 안동 같은 지방 소도시는 젊은이들의 유출로 더욱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산되고 양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70세를 넘긴 어머니도 서서히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계셨다. "정치는 어려워서 모르겠다"면서도,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어르신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안동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2015년 초봄, 어머니는 안동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25년 넘게 운영해 온 시장 식당도 이제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 70대 중반까지 식당 일을 하신 것은 생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익숙한 일상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골손님들이 하나둘 줄어들고, 재료비는 오르는데 음식값은 쉽게 올릴 수 없는 현실에서도 어머니는 묵묵히 가게 문을 열었다. 안동의 작은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 김치찌개 한 솥을 끓이며 손님들과 나누던 소소한 대화들이 어머니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였다.


"사장님, 이제 정말 그만두시는 거예요?"


단골손님이 아쉬워하며 물어보자, 어머니는 담담하게 대답하셨다.


"나이도 들었고, 아들들이 대구로 오라고 하니까... 이제 그만해야지."


하지만 그 말씀 속에는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평생 일해온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73세의 어머니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시장의 다른 상인들도 어머니의 이주 소식에 아쉬워했다. 함께 늙어가며 서로의 안부를 챙겨주던 동료들이었기에, 이별은 더욱 아팠다.


"언제 한번 안동에 놀러 오세요. 시장이 많이 변해도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을 거예요."


"그래, 종종 와서 얼굴 보자. 건강하게 잘 살아야 돼."


이런 인사들을 나누며 어머니는 오랫동안 자신을 품어준 안동 시장과 작별을 준비하셨다.


가슴 아픈 이별의 순간


2015년 4월 어느 봄날, 어머니의 안동 이주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73세의 나이에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자식들과 손주들 곁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셨다.


안동에서의 마지막 날, 근처에 사는 큰 외삼촌이 찾아오셨다. 연신 콧물을 흘쩍거리며 누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셨다. 혈육으로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가 헤어진다고 하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님, 대구 가서도 건강하게 지내세요."


"그래, 너도 몸 조심하고. 종종 안동에 들러곤 할께."


"저도 한 번씩 대구로 누님 보러 갈게요."


남매는 서로의 손을 잡고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어머니도 친정 식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프셨을 것이다.


그날 어머니의 친구 한 분이 오셨는데, 이별이 그렇게 아팠는지 연신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제 가면 언제 보나..."


"종종 연락하고... 대구가 그리 먼 곳도 아니잖아."


"그래 가야지. 여자는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 따르고, 이제는 아들 따라가야지. 그래 가야지."


"가서 건강하게 잘 살아야 돼. 아들들한테 짐이나 되지 말고..."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찡했다.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친구와의 이별이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


이 친구분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훗날 어머니 49재 마지막 날, 그 친구분이 다시 나타나 마지막 이별을 함께 하셨을 때, 안동에서 시작된 인연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연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구 새 보금자리


대구에 마련한 2층 단독주택은 어머니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막내와 함께 살게 된 이 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둘째의 아내인 큰 제수씨가 큰 역할을 했다. 인테리어부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챙겨주신 큰 제수씨의 정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둘째네가 참 고생이 많다. 이런 것까지 다 챙겨주고..."


어머니는 둘째 며느리에 대해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계셨다. 73세의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가족들의 배려 덕분에 어머니는 비교적 편안하게 새 집에 정착할 수 있었다.


새 집은 안동의 옛집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편리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낯선 환경이기도 했다. 익숙한 안동의 골목길과 시장 대신, 대구의 복잡한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집이 참 좋긴 하네. 그런데 아직은 좀 어색해."


어머니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셨다. 평생을 안동에서 보내신 분에게 대구는 분명 다른 세계였다.


하지만 막내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다른 자식들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어머니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무엇보다 손주들을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뻤다.


70대 초반, 변화하는 인식들


대구로 이주한 후 어머니는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셨다. 안동에서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강했지만, 대구에서 며느리들과 손주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손녀들의 성장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이 달라졌다. 60대까지만 해도 "딸들은 시집가면 그 집안사람이야"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였지만, 이제는 손녀들의 공부와 진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셨다.


"요즘 여자들도 공부를 잘해야 하는구나..."


이런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는 시대 변화에 대한 수용의 기미가 엿보였다. 아직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변화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었다.


며느리들에 대한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 애미들이 고생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들도 능력이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보이셨다.


이는 70대에 접어든 어머니가 단순히 전통적 가치관의 수동적 수호자가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를 관찰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일상의 시작


대구에서의 새로운 일상은 안동에서와는 많이 달랐다. 더 이상 새벽에 일어나 시장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대신 막내와 함께 아침을 먹고, 가끔 다른 자식들이 찾아오면 정성스럽게 음식을 해주시는 것이 어머니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할 일이 없어서 답답해하기도 하셨다. 평생 바쁘게 살아오신 분에게 갑작스러운 여유는 오히려 불편한 것이었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몸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새로운 생활 패턴에 적응해 가셨다. TV를 보시면서 시사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막내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시기도 했다. 얼마 안 있어 동네 또래 할머니들을 사귀고, 금호강 강변둑에 산책이나 나들이 가는 등 점차 대구생활에 젖어 들어가셨다.


무엇보다 손주들이 자주 찾아오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안동에서는 명절 때나 볼 수 있었던 손주들을 이제는 훨씬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손주들이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야말로 대구로 이주한 가장 큰 이유이자 보상이었다.


가족과의 거리 좁히기


대구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어머니에게 가족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안동에서는 혼자 지내면서 자식들과 만날 기회가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훨씬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주말이면 자식들이 돌아가며 어머니를 찾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고, 어머니의 안부를 살피고,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어머니도 이런 변화를 만족스러워하셨다. 비록 안동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가족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73세의 어머니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이제야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시며 만족스러워하셨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이제는 가족들로부터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었다.


늦은 출발, 새로운 희망


2015년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통한 경제 혁신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육성, ICT 융합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이 화두였다. 하지만 안동에서 대구로 삶의 터전을 옮긴 73세의 어머니에게는 그런 거대한 정책보다 더 절실한 개인적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경제를 혁신하겠다는 국가적 비전도 중요했지만, 어머니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더 소중한 가치가 있었다. 창조경제가 추구하는 융합과 혁신의 정신을, 어머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계셨다. 전통적 가치관과 변화하는 시대를 융합하고, 73세의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출발이라는 혁신을 감행하신 것이었다.


이것이 어머니 70대 초기의 이야기였다. 73세의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을 위해 용기 있게 터전을 옮긴, 가장 따뜻하고 가장 지혜로운 선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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