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탄생: 통과 무사유가 만든 결과

제1부 AJIM 모델의 탄생

by 한시을

1장. 악의 평범성 – 한나 아렌트의 통찰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 베이트 하암(Beit Ha'am, 인민의 집) 강당. 1,500명의 방청객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55세 중년 남자가 유리 상자 안에 앉아 있었다.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 친위대 중령 출신.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등 죽음의 수용소로 보낸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실행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1960년 5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포해 데려온 전범이었다.

세계는 그가 괴물일 거라 예상했다. 광기 어린 눈빛, 잔혹한 표정, 악마 같은 언어. 하지만 재판정에 나타난 아이히만은 전혀 달랐다. 그는 공손했고, 질서정연했으며, 관료적이었다. 군대식으로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재판장이 질문하면 정확하게 답했다.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마치 업무 보고를 하는 것처럼. 이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미국 <뉴요커> 지가 파견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충격에 빠졌다. 악마는 어디에 있는가?


예루살렘 법정의 평범한 남자

재판 첫날, 검사 기드온 하우스너는 111개 기소 항목을 낭독했다. "인도에 반하는 범죄, 전쟁범죄, 유대인 박해 범죄." 1시간이 넘게 계속됐다. 아이히만은 가만히 앉아서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마치 회의에서 안건을 듣는 것처럼. 재판장 모셰 란다우가 물었다. "피고는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아이히만은 일어나 대답했다. "죄책감의 의미에서는 아닙니다. 하지만 법적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¹

아렌트는 그를 관찰했다. 키는 중간. 체격은 평범. 대머리에 검은 안경. 옷은 단정했다. 말투는 정확했다. 독일 관료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광기를 찾을 수 없었다. 잔혹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터무니없이 평범"했다.²

아렌트는 후에 회고했다. "나는 괴물을 보러 갔다. 하지만 관료를 봤다."³ 이것이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의 시작이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아이히만의 논리가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지 않았다. 단지 설명했다. 그에게는 설명이 곧 변명이었다. 명령을 받았고, 법을 따랐으며, 임무를 수행했다고.

"나는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군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합니다."⁴

"나는 칸트의 정언명법에 따라 살았습니다. 나의 의무를 다했습니다."⁵

"나는 조국을 사랑했고, 법을 준수했으며, 상급자에게 충성했습니다."⁶

재판정은 소란스러워졌다. 방청객들이 분노했다. "칸트를 들먹이다니!" "정언명법이라고?" 하지만 아렌트는 깨달았다. 아이히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의무"를 다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유의 무능력

아렌트는 이를 "사유의 무능력(inability to think)"이라고 명명했다.⁷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령이 정당한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절차였다. 효율이었다. 통계였다.

검사가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았습니까?" 아이히만이 답했다. "저는 수송 담당이었습니다. 목적지는 제 관할이 아니었습니다."⁸ 검사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가스실을 알았습니까?" 아이히만이 답했다. "저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부서의 일이었습니다."⁹

아렌트는 이 답변들을 분석했다. 아이히만은 회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수송"만 담당했다. "수송"은 기술적 문제였다. 열차 시간표, 수송 인원, 효율적 배치. 600만 명의 죽음은 "수송 문제의 효율적 해결"이었다. 가스실은 "특수 처리 시설"이었다. 학살은 "최종 해결"이었다. 그는 절차를 따랐고, 통계를 작성했으며, 보고서를 제출했다. 완벽한 관료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사유하지 않았다.


클리셰로 무장한 언어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언어에 주목했다. 그의 진술은 관료적 용어와 상투적 표현(clichés)으로 가득했다. "명령 수행", "의무 이행", "조직 충성", "효율적 업무 처리". 그는 자신만의 언어로 생각하지 않고, 조직의 언어를 반복했다.

"그는 진부한 표현만을 사용했다. 그가 한 말은 모두 클리셰였다. 그의 언어는 그에게 현실과의 접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¹⁰

검사가 물었다. "당신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아이히만이 답했다. "저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양심의 문제는 상급자가 판단할 일입니다."¹¹ 이 대답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었다. 아이히만은 정말로 양심을 상급자에게 위임했다. 그에게 양심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조직의 규칙이었다. 도덕은 명령이었다. 정의는 절차였다.

이런 언어는 단순히 위장이 아니었다. 아이히만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절차적 언어가 그의 사고를 대체했다. 관료적 용어가 도덕적 판단을 차단했다. 그는 "유대인을 죽였다"고 말하지 않았다. "수송 업무를 완수했다"고 말했다. 이 언어가 그를 보호했다. 현실로부터, 양심으로부터, 진실로부터.


체제가 사유를 제거한다

왜 아이히만은 생각하지 않았는가? 아렌트의 답은 명확했다. 체제가 사유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나치 체제는 개인의 판단을 허용하지 않았다. 총통의 명령이 절대적이었다. "왜?"라고 묻는 것은 불충이었다. 복종만이 덕목이었다.

아이히만은 이 시스템 안에서 "모범적 관료"였다. 1934년 친위대에 입대했다. 1938년 유대인 문제 전담 부서로 발령받았다. 1939년부터 유대인 추방 업무를 맡았다. 1941년 "최종 해결" 실행을 담당했다. 그는 명령을 효율적으로 수행했고, 상급자에게 충성했으며, 절차를 준수했다. 그는 승진했고, 훈장을 받았다. 히틀러는 그를 "유대인 문제 전문가"라고 불렀다.¹²

체제는 그에게 생각하지 말라고 보상했다. 생각하는 관료는 위험했다. 질문하는 관료는 배신자였다. 복종하는 관료만이 살아남았다.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는 생각을 멈췄다. 대신 절차를 따랐다.


무사유의 메커니즘

아렌트는 무사유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첫째, 언어의 대체. 아이히만은 "죽임"을 "처리"로 바꿨다. "학살"을 "해결"로 바꿨다. "고문"을 "심문 기법"으로 바꿨다. 이 언어 변환이 현실을 차단했다. 둘째, 책임의 분산. 아이히만은 "나는 수송만 담당했다"고 말했다. 죽이는 것은 다른 부서였다. 명령하는 것은 상급자였다. 책임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었다. 셋째, 절차의 절대화. 아이히만에게 절차는 정의였다. 법을 따랐으면 옳은 것이었다. 명령을 받았으면 정당한 것이었다.

이 세 가지가 결합하면 사유는 완전히 정지한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는 통계를 봤다. 유대인의 비명을 듣지 않았다. 그는 보고서를 들었다. 유대인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효율을 느꼈다.


피해자의 비인간화

재판 과정에서 생존자들이 증언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진 사람들. 가스실에서 죽은 가족을 잃은 사람들. 그들은 울었다. 비명을 질렀다. 기절했다.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

아이히만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표정 변화가 없었다. 검사가 물었다. "당신은 이 증언을 듣고 무엇을 느낍니까?" 아이히만이 답했다. "저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¹³

아렌트는 깨달았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을 "문제"로, "대상"으로, "수송해야 할 물량"으로 인식했다. 그는 단 한 번도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만 토로했다. "나도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임무가 너무 과중했기 때문입니다."¹⁴

이것이 탈인간화(dehumanization)다. 피해자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간주할 때, 양심은 작동하지 않는다. 사유는 정지한다. 아이히만에게 유대인은 숫자였다. 통계였다. 업무였다.


악의 평범성

1963년,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를 출간했다. 책 제목의 핵심은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다. 악은 특별한 괴물이 저지르는 특별한 행위가 아니다. 악은 평범한 사람이 생각을 멈출 때 발생한다.

"악은 근본적(radical)이지 않고 극단적(extreme)일 뿐이며, 깊이도 악마적 차원도 없다. 악은 표면에서 자라나며 확산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악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¹⁵

아렌트의 분석은 세계에 충격을 줬다. 많은 이들이 반발했다. "아이히만을 평범하다고? 600만 명을 죽인 자를?" 이스라엘 정부는 분노했다. 유대인 단체들은 아렌트를 비난했다. 하지만 아렌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려는 것은 아이히만의 죄를 경감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두려운 진실을 경고하려는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도 조건만 맞으면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생각을 멈추면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의 메아리

아렌트의 통찰은 1960년대 예루살렘에만 해당하는가? 아니다. 2024년 12월 3일, 한국의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하며 말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¹⁶

이 언어는 아이히만의 언어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절차적 용어, 관료적 수사, 피해자의 부재. 그는 국회를 봉쇄하면서 "법과 원칙"을 말했다. 군대를 동원하면서 "헌정질서"를 말했다. 민주주의를 짓밟으면서 "민주주의 수호"를 말했다. 아이히만이 학살을 "최종 해결"이라 불렀듯, 쿠데타를 "국가 수호"라 불렀다.

왜 이런 언어가 반복되는가? 1949년 반민특위 해체 이후, 한국은 "나쁜 통"을 청산하지 못했다. 친일 경찰이 그대로 남았다. 친일 관료가 그대로 남았다. 친일 군인이 그대로 남았다. 이들은 박정희 정권에서 핵심이 됐다. 전두환 정권에서 더욱 강화됐다. 검찰조직은 이 군사문화를 고스란히 계승했다.

상명하복, 절차주의, 효율 중심. 생각하는 검사는 승진하지 못했다. 질문하는 검사는 배제됐다. 복종하는 검사만이 보상받았다. 이 시스템이 75년간 작동했다. 그리고 2024년, 완벽한 산물을 만들어냈다. 윤석열. 그는 BN 유형의 전형이다. 나쁜 통(Bad barrel) 속에서, 사유 없이(Non-thinking), 절차만을 따르는 관료. 아이히만의 한국판.

아렌트가 경고했던 것. 평범한 사람이 생각을 멈출 때, 악은 일상이 된다. 그리고 그 악은 체제가 만든다.


참고문헌

1.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4.11

2.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p.54

3.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p.26

4.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4.15

5.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6.20

6.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6.22

7.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p.49

8.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6.25

9.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6.28

10.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p.48

11.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7.10

12. Raul Hilberg, 『The 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ws』, 1961, p.412

13.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7.18

14. 아돌프 아이히만, 예루살렘 재판 증언록, 1961.7.20

15. 한나 아렌트, 『사유와 도덕적 고려』, 1971, p.180

16. 윤석열,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 202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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