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한국 현대사라는 '나쁜 통'의 생성 과정
1961년 5월 16일 새벽 5시. KBS 라디오방송국. 장도영 육군참모총장 명의의 성명이 전국에 방송됐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혁명공약 6개항이 뒤따랐다.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1위로 삼는다. 둘째, 유엔헌장을 준수한다. 셋째, 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¹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군사혁명이 아니었다. 쿠데타였다.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250여 명의 장교와 3,500여 명의 병사가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했다. 육군본부, 중앙정보부, 방송국, 중앙청. 4·19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 장면 정부가 무너졌다. 민주주의가 1년 만에 종료됐다.²
5.16 쿠데타: 군사문화의 제도화
박정희는 누구인가? 만주군관학교 출신.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제57기). 일본식 이름: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 만주군 중위 출신. 해방 후 남로당 가입. 전향. 한국군으로. 1961년 당시 제2군 부사령관. 육군소장.³
5.16의 핵심 세력은 육군사관학교 8기생들이었다. 김종필, 오치성, 최준명, 신윤창, 옥창호. 이들이 조직을 만들었다. 계획을 세웠다. 1961년 4월 6일. 명동 양명빌딩. 40여 명의 장교가 모였다. 쿠데타 참여를 맹세했다. 처음 목표는 4월 19일 4·19 혁명 1주기 시위 때였다. 하지만 시위가 조용히 지나가자 5월 12일로 연기했다. 정보가 누설돼 다시 연기. 최종 거사일은 5월 16일.⁴
5월 16일 새벽 3시. 해병대 제1여단(김윤근 준장), 육군 제1공수단(박치옥 대령), 제6군단 포병대(문재준 대령), 제30사단, 제33사단이 출동했다.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곧 제압됐다. 국무총리 장면은 수녀원으로 피신했다. 대통령 윤보선은 "올 것이 왔구나"라고 말했다. 미국은 수수방관했다. 쿠데타는 성공했다.⁵
5월 19일.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했다. 장도영을 의장으로, 박정희를 부의장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실권은 박정희에게 있었다. 7월.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됐다. 1963년 8월. 군에서 전역. 12월. 대통령 당선. 18년 독재의 시작.⁶
5.16이 한국 사회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군사문화의 제도화였다. 상명하복. 절대 복종. 질문 금지. 무사유. 만주군-일본군의 문화가 한국군으로 이식됐다. 박정희와 그 주변의 만주군 출신들(김동하, 김윤근, 박임항, 이주일, 송석하, 최주종, 윤태일)이 한국군을 장악했다. 이들이 한국 사회 전체에 군사주의를 확산시켰다.⁷
유신헌법: 총통제의 완성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박정희가 TV와 라디오를 통해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구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비상조치를 국민 앞에 선포하는 바입니다." 비상계엄 선포. 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 활동 정지. 헌법 일부 조항 효력 정지. 서울 세종로에 탱크와 장갑차가 나타났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폈다.⁸
10월 27일. 헌법개정안 공고. 11월 21일. 국민투표. 투표율 91.9%, 찬성률 91.5%. 유신헌법 확정. 12월 27일. 공포. 제4공화국 출범. 유신체제 시작.⁹
유신헌법의 핵심은 무엇이었나? 대통령 1인 영구집권 체제. 대통령 선출 방식: 직선제 →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 임기 6년, 연임 제한 없음. 사실상 종신. 대통령 권한: 국회의원 1/3 추천, 모든 법관 임명,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 국회 권한 축소: 연간 개회일수 150일 이내, 국정감사권 폐지. 삼권분립 파괴. 대통령이 입법·행정·사법 위에 군림.¹⁰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차 회의. 박정희 단독 후보. 재적 2,359명 중 찬성 2,357표, 무효 2표. 반대 0표. 체육관 선거. 박정희 제8대 대통령 당선. 1978년 제9대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 재적 2,581명 중 찬성 2,577표, 반대 0표.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체육관 대통령.¹¹
유신체제는 무엇을 의미했는가? 민주주의의 완전한 파괴. 긴급조치. 1975년 5월 13일. 긴급조치 제9호 발표.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비방하거나 그 개폐를 주장, 청원, 선동 또는 선전하는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 수색한다." "위반자는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¹²
이것이 법과 질서의 수사였다.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국가를 위해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 법은 독재자가 만든 법이었다. 그 질서는 억압의 질서였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면 "법을 어긴다"고 했다. 인권을 주장하면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했다. 법과 질서라는 언어가 통제의 도구가 됐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 부마항쟁.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 반대 시위를 벌였다. 10월 18일. 마산으로 확산. 박정희 정권이 흔들렸다.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했다. 18년 독재가 끝났다.¹³
12.12 군사반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1979년 12월 12일.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났다. 주인공은 전두환. 육사 11기. 육군 소장. 보안사령관. 합동수사본부장. 그는 10.26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그 과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가 방해가 됐다. 정승화는 전두환의 권력 확대를 경계했다. 인사를 통해 전두환 세력을 좌천시키려 했다.¹⁴
전두환은 선수를 쳤다. 11월 중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다. 핵심 세력: 노태우(제9사단장), 황영시(제1군단장), 차규헌(수도군단장), 박희도(제1공수여단장), 최세창(제3공수여단장), 장기오(제5공수여단장),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 우경윤(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장세동(제30경비단장). 모두 하나회 소속이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를 중심으로 한 불법 사조직이었다.¹⁵
12월 12일 오후. 전두환이 동조 세력을 경복궁 내 제30경비단장실로 모았다. 계획을 지시했다. 저녁 7시.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이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했다.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정승화 총장을 체포했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¹⁶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도 체포했다. 이들은 전두환에 저항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리 제거했다. 국방부 B-2 벙커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정선엽 병장이 벙커를 지키다 전사했다. 노태우의 제9사단이 중앙청 앞에 집결했다. 제1공수여단이 서울로 진입했다.¹⁷
최규하 대통령은 처음에는 거부했다. 하지만 밤새 압박을 받았다. 새벽 5시. 사후 승인했다. 쿠데타가 성공했다.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육군본부, 국방부, 중앙청, 경복궁을 점령했다.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했다.¹⁸
전두환의 광속 진급. 1979년 12월: 소장. 1980년 3월: 중장. 1980년 8월: 대장. 중앙정보부장 서리 겸임. 군 조직과 정보 조직을 동시에 장악. 박정희를 오마주했다. 박정희: 1961년 5.16 → 1963년 대통령. 전두환: 1979년 12.12 → 1980년 대통령. 방법은 같았다. 폭력.¹⁹
5.18 광주: 학살로 완성된 권력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 계엄포고령 제10호 선포. 정치활동 금지, 휴교령, 언론 보도 검열.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정치인과 재야 인사 수천 명 감금. 군 병력으로 국회 봉쇄. 5월 18일. 광주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했다. "김대중 석방!" "전두환 퇴진!" "비상계엄 해제!"²⁰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제7공수여단, 제11공수여단. 1980년 3월부터 충정훈련을 받았다. 공세적 진압. 시위대를 향해 돌격. 와해. 주모자 체포.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로 만든 특수 진압봉. 길이 45~70cm, 직경 5~6cm. 단단하고 무거웠다. 총기 개머리판, 대검까지 휘둘렀다.²¹
5월 18일.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 시위. 7공수여단이 강제 해산. 금남로에서 시위 계속. 오후부터 7공수여단이 직접 진압. 진압봉, 총기 개머리판, 대검으로 구타. 연행자를 금남로에서 옷 벗기고 구타. 하루 동안 405명 연행. 5월 19일. 11공수여단 추가 투입. 2인 1조 순찰. 금남로 일대 완전 통제.²²
5월 20일. 시민들이 합류했다. 더 이상 학생 시위가 아니었다. 택시, 버스 200여 대가 시위에 참가했다. 대규모 차량 시위. 공수부대의 폭력이 더욱 심해졌다. 5월 21일. 집단 발포. 오후 1시. 전남도청 앞.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수백 명이 쓰러졌다. 광주는 분노했다.²³
시민들이 무장했다. 예비군 무기고, 경찰서, 국군통합병원에서 무기를 탈취했다. 시민군이 조직됐다. 5월 21일 오후 5시. 시민군이 계엄군을 광주 외곽으로 몰아냈다. 광주 해방. 5월 22일~26일. 닷새 동안 광주는 시민들의 도시가 됐다. 피를 뽑았다. 주먹밥을 만들었다. 무기를 한데 모았다. 질서를 유지했다. 공동체.²⁴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진압했다. 제3공수여단, 제7공수여단, 제11공수여단. 중무장. 최신식 무기. 시민군은 구식 개인화기뿐. 물리력의 차이. 시민군 패배. 항쟁 종료. 희생자 수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공식 집계: 사망 165명, 행방불명 65명, 상이 후 사망 376명. 총 606명. 암매장과 미신고 인원을 고려하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²⁵
전두환은 5.18로 권력을 완성했다. 8월 22일. 육군 대장 예편. 9월 1일. 제11대 대통령 취임. 또 다른 체육관 대통령.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 8년 독재 시작.²⁶
"법과 질서" 수사의 계보
박정희는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유신헌법을 "법"이라고 했다. 긴급조치를 "질서 유지"라고 했다. 민주화 운동을 "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전두환도 마찬가지였다. 5.18을 "폭동"이라고 했다.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광주 시민을 "폭도"라고 불렀다.²⁷
이것이 군사 독재의 언어 구조다. 절차적 언어. "법을 따랐다." "명령을 수행했다." "국가를 위해서였다." 도덕적 판단의 부재. 피해자에 대한 탈인간화. 책임 회피. 무사유. 아이히만의 언어와 똑같다.
1961년부터 1987년까지 26년. 박정희 18년, 전두환 8년. 군사문화가 한국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상명하복. 절대 복종. 질문 금지. 비판 금지. 저항하면 빨갱이. 순응하면 출세. 이 시스템이 경찰, 검찰, 행정부, 사법부로 확산됐다.²⁸
군사문화에서 검찰문화로
박정희와 전두환이 만든 것은 단순히 독재 정권이 아니었다. 통제형 구조였다. 이 구조가 제도화됐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어떻게?
중앙정보부(1961년 설립, 김종필 초대 부장). 모든 것을 감시했다. 도청, 미행, 공작.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개편.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 여전히 반복됐다.²⁹
검찰. 박정희 시대부터 검찰은 정권의 도구였다. 정치적 반대 세력 수사. 긴급조치 위반자 처벌. 민주화 운동가 기소. 전두환 시대에도 마찬가지. 5.18 관련자 수사. "내란죄"로 기소. 사형 선고(김대중). 검찰은 권력자에게 충성했다. 법이 아니라.³⁰
검찰 문화의 특징. 상명하복. 검찰총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검사들은 따른다. 질문하지 않는다. 승진 시스템이 순응을 보상한다. 저항하는 자는 배제된다. 군대와 똑같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만든 시스템이 검찰에 이식됐다.³¹
1987년 6월 항쟁. 민주화. 직선제 개헌. 하지만 검찰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든 정권이 검찰을 이용했다. 검찰은 여전히 권력자에게 충성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 촛불 시위 탄압. 2016년. 박근혜 정권. 세월호 유가족 수사. 검찰은 권력의 칼이었다.³²
윤석열의 탄생
2019년.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됐다. 그는 어디서 왔는가? "윤석열은 1960년생. 박정희 시대를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경험했다. 5.18 당시 19세, 대학생이었다. 전두환 독재를 20대에 경험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자랐다.
1991년. 사법연수원 수료. 검사 임관. 검찰조직 입성. 상명하복 문화. 절차 중심주의. 무사유 구조. 이 안에서 30년. 2013년. 대구고검 검사장. 2019년. 검찰총장. 정점에 올랐다. 그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나? 박정희와 전두환이 남긴 통제형 구조. 법과 질서의 수사. 절차적 언어.³³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 "국회를 마비시킨 반국가 세력을 척결한다." "법과 질서를 회복한다." 박정희의 유신. 전두환의 5.17. 같은 논리. 같은 언어. 같은 무사유.
차이가 있다면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 1980년에는 성공했다. 2024년에는 실패했다. 6시간 만에 계엄 해제. 왜? 시민들이 사유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저항했기 때문이다. 일부 군인들이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BT가 늘어났기 때문이다.³⁴
하지만 구조는 여전히 살아있다. 1949년 반민특위 해체로 시작된 나쁜 통. 1961년 5.16으로 제도화된 군사문화. 1972년 유신으로 완성된 총통제. 1979년 12.12로 계승된 권력 탈취. 1980년 5.18로 확인된 학살. 이 모든 것이 검찰로 이어졌다. 윤석열로 이어졌다.
결론: 청산되지 않은 구조는 반복된다
박정희는 반민특위 해체의 수혜자였다. 만주군 출신이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만든 시스템의 계승자였다. 군사문화를 학습했고 재현했다. 윤석열은 전두환이 남긴 검찰 시스템의 산물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구조를 체화했다.³⁵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박정희가 특별히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전두환이 특별히 잔인해서가 아니다. 윤석열이 특별히 무능해서가 아니다. 구조가 이들을 만들었다. 나쁜 통 × 무사유 = BN. 이 공식이 75년간 작동했다.
해법은 명확하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검찰 개혁. 상명하복 폐지. 절대 권력 분산. 내부 고발자 보호. 저항의 제도화. 동시에 사유를 회복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 교육. 질문하는 능력. 판단하는 시민.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1949년에 실패한 과제. 2025년에 완수해야 한다. 반민특위가 하려던 일. 청산. 박정희, 전두환이 만든 시스템의 청산. 그들은 죽었지만 시스템은 살아있다. 이것을 해체하지 않으면, 또 다른 윤석열이 나타날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구조는 같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형식이 아니다. 투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유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나쁜 통을 감시하고 저항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만든 통제형 구조를 해체하고,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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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16"
3. 인천투데이, "4.19혁명 뭉갠 박정희 5.16 쿠데타 군부독재 시작", 2024.5.16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16"
5. 위키백과, "5·16 군사정변"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군사혁명위원회"
7. 대우재단, "5·16 쿠데타 후 60년 관련 주요 쟁점"
8.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유신헌법"
9. 우리역사넷, "10월 유신 1972"
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월유신"
11.중앙선거관리위원회, "10월 유신과 제3차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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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리역사넷, "10월 유신 1972"
1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2·12 군사반란"
15. 나무위키, "12.12 군사반란"
16. 아시아경제, "'1212 사태'란? 40년 전 전두환·노태우가 주도한 군사반란", 2019.12.12
17. 경기일보, "1212사태란?... 1979년 그날, 무슨일이", 2024.12.12
18. 위키백과, "12·12 군사 반란"
19. 나무위키, "12.12 군사반란"
20.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18광주민주화운동"
21.518.org, "5·18 그날의 기록과 진실"
22. 우리역사넷, "5·18 광주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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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윤석열 경력 관련 공개 자료
34. 2024.12.3 계엄 관련 보도
35. AJIM 모델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