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한국 현대사라는 '나쁜 통'의 생성 과정
1945년 11월 20일. 독일 뉘른베르크. 연합국이 나치 전범 24명을 재판대에 세웠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개월 만이었다.¹ 혁명이 아니었다. 전쟁 승리의 결과물도 아니었다. 법의 심판이었다.
"피고인 헤르만 괴링,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빌헬름 카이텔, 알프레트 요들... 귀하들은 평화에 대한 범죄,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범죄로 기소됩니다." 세계 최초의 국제군사재판. "인도에 반한 죄"라는 개념이 처음 법적으로 확립된 순간.² 1946년 10월 1일. 판결. 12명 사형. 3명 종신형. 4명 징역형. 3명 무죄.
10월 16일 새벽. 사형 집행. 괴링은 전날 밤 청산가리를 삼키고 자살했다. 나머지 11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³ 시신은 화장되어 강에 뿌려졌다. 무덤조차 남기지 않았다.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뉘른베르크가 세운 원칙
뉘른베르크 재판은 단순히 전범을 처벌한 것이 아니었다. 원칙을 세웠다. 첫째, "명령에 따랐을 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둘째,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범죄도 개인이 책임진다. 셋째,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될 수 있다.⁴
대부분의 피고들은 자신들이 기소된 범죄 행위를 시인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변명을 했다. "상급 기관에서 내려온 명령을 따른 것 뿐이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으로는 면책되지 않는다.⁵
하지만 뉘른베르크는 완벽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자살했다. 괴벨스도 자살했다. 힘러도 자살했다. 최고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을 피했다. 그리고 많은 전범이 도주했다. 위조된 신분으로 남미로, 중동으로. 그들을 추적하는 일이 시작됐다.
15년 후, 예루살렘
1960년 5월 1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한 남자를 납치했다. 리카르도 클레멘트. 가명이었다. 진짜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⁶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낸 책임자. 나치 친위대 중령.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실무 책임자.
예루살렘으로 압송됐다. 9개월간 집중 심문. 3,500페이지 증거 기록.⁷ 1961년 4월 11일. 재판 시작. 전 세계 생중계. 112명의 증인. 15가지 혐의로 기소: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수백만 명 학살, 치클론-B 독가스 도입 및 운용, 리투아니아 8만 명 학살, 라트비아 3만 명 학살, 벨로루시아 4만5천 명 학살, 우크라이나 7만5천 명 학살, 키예프 3만3천 명 학살 계획 입안 등.⁸
아이히만의 변명. 뉘른베르크 전범들과 똑같았다.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법을 따랐습니다." "국가를 위해 일했습니다." "나는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했다. "제3제국에서는 총통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법이었고, 그 법을 수행하는 것이 본인의 양심이 되었다"고 강조했다.⁹
한나 아렌트가 방청석에 앉았다. 《뉴요커》 특파원 자격.¹⁰ 아이히만을 관찰했다. 악마를 기대했다. 괴물을 기대했다. 하지만 본 것은 평범한 중년 남성. 안경 쓴 관료. 절차를 강조하는 공무원. 독일계 유대인 심문관 아브네르 레스는 아이히만이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를 깨닫지 못하고, 후회하는 감정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고 개탄했다.¹¹
1961년 12월 15일. 판결. 15가지 혐의 모두 유죄. 사형 선고. 재판장 모세 란다우는 판결문에서 말했다. "그 범죄들은 그들의 본성과 능력에서 나온 전례가 없는 참상입니다. 유대인을 겨냥한 범죄의 목표는 유대인만이 아닌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제거하려 한 것과 같습니다."¹² 1962년 6월 1일. 교수형 집행.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사형.¹³
독일: 멈추지 않는 청산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에도 독일의 전범 재판은 계속됐다.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멈추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재판(1963-1965). 마이다네크 재판(1975-1981). 90대 간수도 재판대에 섰다. 나이는 변명이 되지 않았다.¹⁴
독일은 선택했다. 과거와 단절하는 것을. 나치에 대한 모든 상징을 금지했다. 하켄크로이츠. 나치식 경례. 히틀러 찬양. 모두 범죄. 홀로코스트 부정도 범죄. 역사 교과서에 나치의 범죄를 자세히 기록했다. 학생들을 수용소 유적지로 데려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¹⁵
결과는? 독일은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경제 강국이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는 파시즘이 권력을 잡지 못했다는 것. 청산이 예방이 됐다.
한국: 반복되는 쿠데타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 해체. 친일파 청산 실패.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쿠데타. 만주군 출신이 권력을 잡았다. 처벌받지 않은 친일파가 대통령이 됐다. 아무도 막지 못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쿠데타. 박정희가 만든 시스템의 계승자. 군사문화. 상명하복. 무사유.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 공식 집계 606명 희생(사망 165명, 행방불명 65명, 상이 후 사망 376명).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¹⁶ 1987년까지 8년 독재. 뉘른베르크 재판 후 독일이 겪은 과정과 정반대.
왜 한국에서는 같은 패턴이 반복됐는가?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1961년 쿠데타 후 1963년 대통령이 됐다. 처벌받지 않았다. 1979년 암살당했다. 하지만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전두환도 마찬가지. 1980년 쿠데타 후 1988년까지 대통령. 처벌받지 않았다.
1995년, 늦어도 너무 늦은 재판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 특별담화. "문민정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는 역사에 맡기겠습니다."¹⁷ 청산하지 않겠다는 선언. 국민과 시민사회가 분노했다. 1993년 7월 19일.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등 22명이 전두환·노태우를 반란죄로 검찰에 고소.
1995년 7월 18일. 검찰 발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불기소 처분.¹⁸ 국민 분노 폭발. 1995년 10월 19일. 노태우 비자금 폭로. 4천억 원대. 구속. 1995년 11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이 결국 방향을 바꿨다. "5.18 특별법을 제정하겠습니다." 1995년 12월 3일. 전두환 구속. 1995년 12월 21일. 5.18 특별법 국회 통과.¹⁹
1996년 8월 26일. 1심 판결.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22년 6개월.²⁰ 검찰은 전두환에게 사형을, 노태우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었다. 재판부는 전두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피고인 전두환을 사형에 처한다."
하지만 이것도 끝이 아니었다. 1996년 12월 16일. 항소심 판결.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 감형.²¹ 이유? "6.29 선언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한 점을 참작." 6.29 선언? 1987년 6월 항쟁으로 국민이 쟁취한 것이었다. 전두환이 준 것이 아니었다. 빼앗긴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것을 "양형 참작 사유"로 삼았다.
전두환 스스로도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권성 2심 재판장의 공판 진행과 관련해서 나는 물론 변호인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공소가 제기된 사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6·29 선언을 재판장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양형 판단에 참고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6·29 선언을 함으로써 '항복'한 일도 없고,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 폭거에 '항복'한 일도 없었던 것이다."²²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확정.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 하지만 같은 해 12월 22일. 특별사면.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였다. "국민 화합"을 위해. 전두환은 형기 중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석방됐다. 노태우도 마찬가지.²³
뉘른베르크와 서울: 결정적 차이
독일은 전쟁 종전 6개월 만에 재판을 시작했다. 한국은 사건 발생 15년 후에야 재판을 시작했다. 독일은 사형을 즉시 집행했다. 한국은 사형을 선고하고도 감형했고, 감형된 형조차 제대로 채우지 않고 사면했다. 독일은 뉘른베르크 이후에도 계속 전범을 추적하고 재판했다. 한국은 1997년 사면으로 청산을 종료했다.
독일은 나치 상징을 모두 금지했다. 한국은 박정희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독일은 학생들에게 가해 역사를 의무적으로 교육했다. 한국은 선택적이고 논쟁적으로 가르쳤다. 독일에서는 다시 파시즘이 권력을 잡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2024년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됐다.
차이는 명확하다. 청산의 유무. 독일은 청산했다. 한국은 하지 않았다. 독일은 예방했다. 한국은 반복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청산되지 않은 독재자들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암살당했다. 재판받지 않았다. 역사적 평가를 받지 않았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딸이 대통령이 됐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박근혜는 취임사에서 "아버지가 이루신 경제 발전"을 강조했다.²⁴ 쿠데타와 유신독재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전두환은 2021년 11월 23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90세. 연희동 자택.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원했던 사과를 끝내 하지 않고. 5.18 유족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나는 29만 원밖에 없다"고 거짓말하고. 추징금 1천억 원 이상을 끝내 내지 않고.²⁵
2020년 11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재판. 자신을 비난하는 시위대에게 "말조심해 이놈아"라고 소리를 치고 성질을 냈다. 재판 중에도 여전히 불성실한 태도. 국민들의 공분. 이날 전두환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²⁶ 사실상 처벌 없음.
2021년 11월 28일. 전두환 장례. 사저에서 영결식. 군인들이 운구했다. 육군 명예 예편 대장 예우.²⁷ 이것이 학살자에 대한 예우였다. 광주에서는 시민들이 항의 집회를 열었다. "전두환은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택에서 편안히 죽었다.
윤석열: 청산되지 않은 구조의 산물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 "국회를 마비시킨 반국가 세력을 척결한다." 박정희의 10월 유신. 전두환의 5.17. 같은 논리. 같은 언어. "법과 질서." "국가를 위해." "반국가 세력."
윤석열은 1980년생이다. 5.18 당시 0세. 박정희는 경험하지 못했다. 전두환 독재는 어린 시절에만 봤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자랐다. 1991년 검사 임관. 검찰조직 입성. 박정희와 전두환이 만든 상명하복 문화. 절차 중심주의. 무사유 구조. 이 안에서 30년.
왜 윤석열 같은 인물이 나왔는가? 박정희와 전두환을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을 해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 상명하복. 법과 질서의 수사. 이 모든 것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윤석열을 만들었다.
히틀러→아이히만의 구조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구조가 있었다. 히틀러가 만든 나치 체제. 총통의 명령이 법이 되는 시스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양심이 되는 구조. 피해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문화. 이 구조가 평범한 관료 아이히만을 학살의 기계로 만들었다.
히틀러는 자살했다. 재판받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은 그가 만든 구조를 해체했다. 나치 체제를 불법화했다. 명령 복종 논리를 거부했다. "상급 기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다시 히틀러가 나오지 않았다.
박정희/전두환→윤석열의 구조
한국은 어떤가? 박정희는 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만주군 출신. 일본군 문화를 한국군에 이식했다. 상명하복. 절대 복종. 질문 금지. 무사유. 1972년 유신헌법으로 총통제 확립. 대통령의 명령이 법이 되는 시스템. 1979년 암살당했지만 청산되지 않았다.
전두환은 박정희 시스템의 계승자였다. 1979년 12.12로 권력 탈취. 1980년 5.18로 권력 확립. 박정희가 만든 군사문화를 검찰·경찰·행정부 전체로 확산. 상명하복. 절대 복종. 무사유. 1997년 재판받았지만 곧 사면됐다. 청산되지 않았다.
윤석열은 이 구조의 산물이다. 박정희가 심고 전두환이 키운 씨앗. 검찰 조직이 제도화한 무사유. 상명하복이 당연시되는 문화. "법과 질서"라는 수사로 포장된 권위주의. 30년간 이 안에서 자라며 체화했다. 2024년 12월 3일.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이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계엄 선포. 반국가 세력 척결. 법과 질서 회복.
차이는 무엇인가?
독일은 히틀러가 죽은 후 나치 체제를 해체했다. 한국은 박정희가 죽은 후에도 그가 만든 체제를 유지했다. 독일은 아이히만을 추적해서 재판했다. 한국은 전두환을 재판했지만 곧 사면했다. 독일은 90대 전범도 재판대에 세웠다. 한국은 전두환이 90세까지 편안히 살게 했다.
독일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한국은 "법과 질서를 지켰다"는 수사를 용인했다. 독일은 나치 상징을 금지했다. 한국은 박정희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독일은 가해 역사를 교육했다. 한국은 "경제 발전"을 강조했다.
결과는? 독일에서는 다시 히틀러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2024년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 75년 전 박정희가 심은 씨앗. 45년 전 전두환이 키운 나무. 2024년 윤석열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2024년 12월 3일의 의미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우연이 아니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75년간 청산되지 않은 구조의 폭발이었다. 1949년부터 누적된 문제. 박정희가 심고 전두환이 키운 씨앗. 검찰 조직이 제도화한 무사유. 이 모든 것의 결과물.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다. 왜? 시민들이 사유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저항했기 때문이다. 군인 일부가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1980년과 달랐다. 독일이 뉘른베르크 이후 교육한 것. "명령에 따르는 것만으로는 면책되지 않는다." 이것을 한국 시민들이 체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조는 여전히 살아있다. 검찰. 상명하복. 무사유. 법과 질서의 수사. 이것을 해체하지 않으면, 또 다른 윤석열이 나타날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패턴은 같을 것이다.
청산은 복수가 아니다
독일이 뉘른베르크 재판을 한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예방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을 단죄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다. 예방이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다시는 계엄이 선포되어서는 안 된다."
히틀러는 죽었다. 재판받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은 나치즘을 청산했다. 박정희는 죽었다. 전두환도 죽었다. 재판받지 않았거나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시스템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윤석열을 만들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가 놓친 것이 있다. 악이 평범해지는 구조. 히틀러가 만든 나치 체제. 박정희와 전두환이 만든 군사독재 체제. 이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이 계속 악을 저지른다.
2026년, 한국의 선택
지금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독일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반복할 것인가? 1949년, 1961년, 1979년, 1995년에 놓쳤던 기회. 2026년에는 놓쳐서는 안 된다.
청산해야 한다. 박정희. 전두환. 그들이 만든 시스템. 검찰 조직. 상명하복 문화. 법과 질서의 수사. 절차 만능주의. 무사유 구조. 이 모든 것을. 그래야 윤석열이 마지막이 된다.
독일은 90대 전범도 재판대에 세웠다. 나이는 변명이 되지 않았다. "명령에 따랐을 뿐"도 변명이 되지 않았다. 한국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윤석열뿐만 아니라, 그를 만든 시스템도 재판대에 세워야 한다. 검찰 조직. 상명하복 문화. 군사독재의 잔재. 모두.
히틀러가 아이히만을 만들었다면, 박정희와 전두환은 윤석열을 만들었다. 청산하지 않은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 청산하지 않은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 2026년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참고문헌
1.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나무위키》
2.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3.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나무위키》
4. 「뉘렌베르그 재판」,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5. 「뉘렌베르그 재판」,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6. 「아돌프 아이히만」, 《나무위키》
7. 「아돌프 아이히만」, 《나무위키》
8. 「1961년 4월,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의 첫 재판 열리다」,2018.4.17
9.「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나무위키》
10.「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나무위키》
11. 「아돌프 아이히만」, 《나무위키》
12. 「1961년 4월,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의 첫 재판 열리다」, 2018.4.17
13. 김태우, 「아돌프 아이히만의 최후」, 《RFA 자유아시아방송》, 2025.2.15
14. 「전후 재판」,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15. 「나치 전범 재판이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이유」, 《오마이뉴스》, 2023.9.6
16. (9장 참조: 5.18 광주민주화운동)
17.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위키백과》
18. 「역사바로세우기 1995」, 《우리역사넷》
19.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위키백과》
20. 「"피고인 전두환을 사형에 처한다"... 다시 보는 내란 수괴 1호 대통령 재판」, 《한국일보》, 2025.1.30
21.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 《나무위키》
22.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 《나무위키》
23.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위키백과》
24. (박근혜 취임사 공개 자료)
25. 「전두환」, 《위키백과》
26. 「전두환」, 《위키백과》
27. (전두환 장례 관련 2021년 11월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