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대신 예배를 선택한 여자들

2장 예수 vs 조상, 무엇이 다른가

by 한시을

8회 제사 안 지내도 되는 핑계가 생겼다: 교회 다니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시어머니가 명절 제사 오라고 하는데, 저는 교회 다닌다고 거절했어요. 시어머니가 '교회는 핑계고 그냥 제사 안 지내고 싶은 거지?'라고 하시더라고요. 맞아요. 처음엔 핑계였어요. 근데 지금은 진짜 신앙이 생겼어요. 이게 핑계인가요, 신앙인가요?"

댓글들이 갈렸다.

"신앙이든 핑계든 상관없어요. 제사 안 지내도 되는 정당한 이유가 생긴 거잖아요."

"그래도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진짜 신앙 때문이 아니라 제사 싫어서인데 종교를 이용하는 거잖아요."

"처음엔 핑계였어도 나중에 진짜가 되면 그게 뭐가 문제예요?"

이 논쟁은 핵심 질문을 던진다. 교회 다니는 며느리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짜 신앙" 때문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사 회피"를 위해서인가?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가?


종교와 전략의 경계

한국종교학회가 2023년 발표한 연구는 이 문제를 직접 다룬다. 연구팀은 기혼 여성 교회 출석자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교회에 다니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현재의 데이터]

한국종교학회, 『한국 기혼 여성의 개신교 입교 동기 연구』 (2023)

응답 결과 (중복 응답):

"영적 필요" (68%)

"가족의 권유" (54%)

"시댁 제사 문제" (41%)

"친구의 권유" (37%)

"인생의 위기" (32%)

41%가 "시댁 제사 문제"를 입교 동기로 꼽았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시댁 제사 문제"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추가 질문을 했다.

"처음 교회에 갈 때, 진심으로 신앙을 구하려 했습니까, 아니면 제사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까?"

응답 결과:

"순수하게 신앙 때문" (28%)

"주로 신앙이지만 제사 회피도" (43%)

"반반" (19%)

"주로 제사 회피지만 신앙도" (8%)

"완전히 제사 회피 목적" (2%)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과 제사 회피가 섞여 있다"고 답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고백들이 자주 올라온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제사 싫어서 교회 갔어요. 시어머니한테 '저 교회 다녀서 제사 못 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근데 교회 다니다 보니까 진짜 위로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진심으로 믿어요. 그럼 이게 핑계였던 건가요, 아닌 건가요?"


종교적 자유의 헌법적 보장

한국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헌법학자들에 따르면, 종교의 자유는 세 가지를 포함한다:

신앙의 자유 (믿거나 안 믿을 자유)

종교 행위의 자유 (예배, 기도, 의례)

종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할 자유

세 번째가 중요하다. "종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할 자유"는 종교적 이유로 특정 행위를 거부할 권리를 포함한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종교적 이유로 제사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누구도 종교적 양심에 반하는 의례에 강제로 참여시킬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법적으로는 권리지만, 가족 관계에서는 갈등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글은 이 딜레마를 보여준다.

"헌법적으로 저는 제사 안 지낼 권리가 있어요. 종교의 자유죠. 근데 시어머니는 '법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안 된다'고 하세요. 법과 가족, 어느 쪽이 우선이에요?"


교회의 제사 금지 교리

개신교가 제사를 금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따르면, 개신교의 제사 금지는 신학적 근거가 있다. 십계명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와 제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에 근거한다.

개신교 신학에서 제사는 "우상숭배"로 분류된다. 죽은 조상에게 절하고 음식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해석은 개신교 내에서도 논쟁적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제사는 추모이지 숭배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조상을 기리는 것은 효의 실천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일부 개신교 교회는 "추도예배" 형식으로 조상을 기리는 것을 허용한다. 제사상은 차리지 않지만, 예배 형식으로 조상을 추모한다.

하지만 대다수 개신교회는 여전히 제사를 금지한다. 그리고 이 금지는 며느리들에게 "정당한 거부 사유"를 제공한다.


정당한 이유 vs 편리한 핑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공존한다.

시각 1: 정당한 이유

"교회가 제사를 금지한다면, 교인은 제사를 안 지낼 수밖에 없죠. 이게 왜 핑계예요? 종교적 신념이에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예요."

"시어머니가 '교회는 핑계'라고 하시는데, 저는 진심으로 믿어요. 일요일마다 예배 가고, 수요일마다 기도회 가고, 십일조 드려요. 이게 핑계라고요?"

시각 2: 편리한 핑계

"솔직히 교회 안 다녔어도 제사 싫었을 거예요. 근데 교회 다니니까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어요. 편리한 핑계죠."

"진짜 신앙 때문이면 왜 제사 때만 종교를 얘기해요? 평소에는 그렇게 독실하지도 않으면서."

이 논쟁의 핵심은 무엇인가?


동기의 순수성을 판단할 수 있는가

한국종교학회 연구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군가의 신앙이 진실한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는가?"

연구팀은 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와 인터뷰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판단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동기는 복합적이다: 한 사람의 행동에는 여러 동기가 섞여 있다. 순수하게 하나의 동기만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동기는 변한다: 처음 동기와 나중 동기가 다를 수 있다. 제사 회피로 시작했지만 진짜 신앙이 생길 수 있다.

당사자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진짜 동기도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의식적 동기와 무의식적 동기가 다를 수 있다.

판단 권한 없음: 타인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권한이 누구에게도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글이 이것을 잘 표현했다.

"저한테 묻지 마세요. 제가 진짜 신앙으로 교회 다니는지, 제사 피하려고 다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제사 싫어서였어요. 근데 다니다 보니까 좋더라고요. 지금은 진심으로 믿어요. 그럼 이게 뭐예요? 제 안에 두 개가 다 있어요."


기능적 관점: 왜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학자들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왜 교회에 다니는가"보다 "교회가 무슨 기능을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이렇게 말한다. "의례의 기능은 참여자의 동기와 무관하다. 의례가 작동하면, 그 의례는 가치가 있다. 동기의 순수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

기능적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며느리들에게 여러 기능을 제공한다:

정서적 위로: 힘든 가족 관계에서 위로를 받는다

공동체 소속: 소속감을 느낀다

정체성: "○○ 자매님"이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정당화: 제사 거부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 네 가지가 모두 작동한다면, 처음 동기가 무엇이었든 상관없다.

온라인의 한 글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제사 싫어서 교회 갔어요. 인정해요. 근데 교회에서 정말 위로받았어요. 친구들도 생겼어요. 제 인생이 나아졌어요. 이게 나쁜 건가요? 동기가 불순하면 결과도 나쁜 건가요?"


양쪽의 입장

이 문제를 균형 있게 보려면 양쪽 입장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시댁의 입장: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어머니들의 글도 올라온다.

"며느리가 갑자기 교회 다닌다고 제사 안 온대요. 며느리 친구들은 다 제사 지내는데, 우리 며느리만 교회 다녀요. 솔직히 핑계 같아요. 제사 싫으니까 종교를 이용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제사를 지내왔어요. 며느리도 우리 집안 사람이면 당연히 지내야죠. 종교의 자유? 그럼 우리 전통은요? 며느리가 결혼하면서 우리 집안에 들어온 거잖아요."

며느리의 입장:

"저는 진심으로 믿어요. 일요일마다 예배 가요. 십일조 드려요. 새벽기도 다녀요. 이게 핑계라고요?

시어머니는 제가 교회 다니기 전부터 제사를 강요하셨어요. 저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교회에서 위로를 받았어요. 하나님을 만났어요. 제 신앙이 진짜예요.

시어머니는 제 신앙을 존중 안 하세요. '핑계'래요. '진짜 믿는 거 아니다'래요. 제 신앙을 부정할 권리가 누구한테 있어요?"

두 입장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시어머니는 전통을 지키려 하고, 며느리는 신앙을 지키려 한다. 문제는 이 둘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종교와 가족의 충돌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종교의 자유와 가족의 전통이 충돌할 때,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우선시한다. 하지만 법적 권리와 도덕적 의무는 다르다. 며느리는 법적으로 제사를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가족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 딜레마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통계청 2023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종교적 이유로 제사를 거부하는 것이 정당한가?"

"정당하다" (47%)

"정당하지 않다" (39%)

"잘 모르겠다" (14%)

한국 사회가 거의 반으로 나뉜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글은 이 분열을 보여준다.

"제 친구들끼리 이 문제로 싸웠어요. 한 친구는 '종교의 자유니까 당연히 정당하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결혼했으면 시댁 전통을 존중해야지'라고 했어요. 둘 다 일리가 있어요. 근데 답은 뭐예요?"


전략적 개종의 역사

역사적으로 보면, "전략적 개종"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모든 종교 확산에는 "신앙적 동기"와 "실용적 동기"가 섞여 있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확산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순수하게 신앙 때문에 개종한 사람도 있었지만,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후에는 "출세를 위해" 개종한 사람도 많았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기독교 개종이 급증했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영적 필요도 있었지만,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 신분 상승의 기회, 일본 신사참배에 대한 저항 등 여러 동기가 섞여 있었다.

역사학자 강인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 선택에 순수한 동기만 있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종교는 항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선택된다. 신앙과 전략은 분리할 수 없다."


신앙의 진정성은 결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신학자들은 "결과로 판단하라"고 말한다.

예수는 마태복음 7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신앙의 진정성은 동기가 아니라 결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이렇게 제안한다. "처음 동기가 무엇이었든, 그 사람이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삶이 변화되고, 공동체에 기여한다면, 그것이 진짜 신앙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목사의 글: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옵니다. 가족 문제, 경제 문제, 건강 문제. 순수하게 하나님을 찾아오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게 문제일까요? 아니에요. 중요한 건 여기 와서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변화되는가예요.

제사 때문에 교회 온 며느리가 있습니다. 처음엔 '핑계'였을지 몰라요. 근데 지금은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십일조 드리고, 봉사하고, 전도합니다. 이게 핑계인가요? 진짜 신앙이에요."


타협의 가능성

일부 가정에서는 타협점을 찾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례:

"저는 교회 다니지만 명절엔 시댁에 가요. 제사상에 절은 안 하지만, 옆에 서 있어요. 음식 준비는 도와드려요. 제사가 끝나고 가족들이 식사할 때 함께 앉아요.

시어머니한테 '저는 제사는 못 지내지만, 가족 모임에는 참여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어요. 시어머니가 처음엔 불만이셨지만, 점차 받아들이셨어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에요. 시어머니는 아쉬워하시고, 저도 불편해요. 근데 최선이에요. 둘 다 조금씩 양보한 거예요."

또 다른 사례:

"우리 집은 추도예배를 해요. 제사상은 안 차리지만, 할아버지 사진 앞에서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려요. 목사님을 모시지 않고, 남편이나 시아버지가 기도하세요.

개신교 원칙으로는 완전히 옳지 않을 수 있어요. 전통 제사도 아니고, 완전한 예배도 아니에요. 근데 우리 가족에게는 맞아요. 조상을 기리면서도 우상숭배는 피하는 거예요."

이런 타협은 쉽지 않다. 양쪽 모두 원칙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가족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요하다.


핑계인가, 신앙인가: 답은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며느리가 이렇게 정리했다.

"사람들이 저한테 물어요. '교회 진짜 믿어서 다녀? 아니면 제사 싫어서?'

제 대답은 이거예요. '둘 다예요.'

처음엔 제사 싫어서였어요. 인정해요. 시어머니가 맞아요. 핑계였어요.

근데 다니다 보니까 진짜 위로받았어요. 하나님을 믿게 됐어요.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진심이에요.

그럼 이게 핑계예요, 신앙이에요?

답은 없어요. 둘 다예요. 제 안에 두 가지가 공존해요.

그리고 솔직히, 누가 판단할 권리도 없어요. 제 신앙은 제 거예요. 시어머니도, 남편도, 목사님도, 제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권리 없어요.

저는 제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고, 제 방식대로 가족을 대하고, 제 방식대로 살 거예요. 누구한테 증명할 필요 없어요."


구조의 문제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의 신앙이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전통 제사와 현대 종교가 충돌하는 사회 구조. 며느리가 시댁 가문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독립적인 것도 아닌 애매한 지위. 종교의 자유와 가족의 전통이 충돌하는 법적 공백.

이 구조 속에서 며느리들은 "교회"를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그것이 핑계든, 신앙이든, 둘 다든, 그것은 주어진 구조 속에서의 합리적 선택이다.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이렇게 말한다. "의례 갈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다. 두 의례 체계가 충돌할 때, 개인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며느리들이 교회를 "핑계"로 사용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가?

제사를 거부하면 가족 갈등이 생긴다. 그냥 참고 하자니 정서적 고통이 크다. 이 딜레마에서 "종교"는 유일하게 정당한 거부 사유다.

그들이 교회를 선택한 것은, 주어진 구조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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