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기본소득이 답이다

2장 AI 충격의 현실

by 한시을

6화: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한계 신호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규모 7.0 지진을 버틸 수 있을까요?


당시 건축 기준으로는 최고급이었을 겁니다. 튼튼한 철근 콘크리트에 정성스럽게 설계된 구조물이었죠.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전에 없던 강력한 지진이 밀려온다면 어떨까요?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가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실업급여는 1995년, 고용보험은 1993년에 만들어졌어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도들이었죠. 하지만 지금 AI라는 '디지털 지진'이 한반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과연 이 오래된 건물들이 새로운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지난 회에서 살펴본 것처럼, AI 지진은 선택적이고 집중적입니다. 어떤 지역은 산사태가 일어나고, 어떤 직종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요. 이런 상황에서 30년 전 설계된 우리 사회보장제도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실업급여라는 오래된 방파제


먼저 실업급여부터 살펴보죠. 바닷가 마을의 방파제를 생각해 보세요. 평상시 파도는 잘 막아주지만, 쓰나미가 오면 어떨까요?


현재 우리나라 실업급여 시스템은 **'정상적인 실업'**에 맞춰져 있어요.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경기 침체로 인한 일시적 실업 말이에요. 하지만 AI로 인한 대량실업은 차원이 다릅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어요. 18개월 이상 고용보험 가입, 비자발적 이직, 적극적 구직 활동 등이죠. 받을 수 있는 기간도 최대 270일(약 9개월)에 불과해요.


[현재 데이터: 실업급여 현황] 실업급여 수급자: 월평균 65만 명(고용노동부, 2024). 평균 지급액: 월 158만 원. 수급 기간: 평균 4.2개월. 전체 실업자 대비 수급률: 34%


문제는 규모입니다. 지금도 월 65만 명이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데, AI로 400만 명이 동시에 일자리를 잃는다면? 현재 시스템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해요.


더 큰 문제는 자격 요건입니다. AI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단기 계약직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들은 애초에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거든요.


경기도 안산의 한 배달 라이더는 3년간 일했지만 고용보험에 가입된 적이 없어요. 만약 AI 배달 로봇이 도입되면 그는 실업급여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고용보험이라는 1990년대 병원


고용보험 시스템을 동네 병원에 비유해 볼까요? 평상시 감기 환자나 간단한 외상 환자는 잘 치료해 줍니다. 하지만 갑자기 대형 사고로 중환자 100명이 몰려온다면?


고용보험은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변화를 전제로 설계됐어요.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 특정 산업의 쇠퇴 같은 것들 말이에요. 하지만 AI 혁명은 동시다발적이고 급격한 변화예요.


현재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약 9조 원입니다(고용노동부, 2024). 듣기에는 큰돈 같지만, AI 시대 대량실업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요.


간단히 계산해 보죠. 실업자 400만 명이 평균 6개월간 월 150만 원씩 받는다면? 총 3조 6천억 원이 필요해요. 단 6개월 만의 지출로 기금의 40%가 사라지는 거죠.


[미래 시나리오: 고용보험기금 고갈 시뮬레이션] 현재 적립금: 9조 원. AI 대량실업 시 연간 지출 예상: 7조 원. 기금 고갈 시점: 1.3년. 추가 재원 조달 필요액: 연 5조 원


더 심각한 건 시간입니다. 고용보험 시스템은 실업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버티게' 해주는 역할이에요. 하지만 AI 시대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럼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요?


직업훈련이라는 모래성


정부는 "재교육하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 직업훈련 시스템은 AI 쓰나미 앞의 모래성 같아요.


전국에 있는 폴리텍 대학과 직업훈련기관들이 연간 교육할 수 있는 인원은 약 50만 명입니다(한국기술교육대학교, 2024). 그런데 AI로 재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수백만 명이에요. 10년을 해도 모자라죠.


더 큰 문제는 교육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직업훈련이 아직도 20세기 기술에 머물러 있어요. 용접, 기계 조작, 사무 소프트웨어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런데 바로 이런 기술들이 AI로 대체되고 있어요.


[현재 데이터: 직업훈련 현실] 연간 직업훈련 정원: 약 50만 명. AI 관련 과정 비중: 3.2%. 40세 이상 참여자 완료율: 45%. 취업 연계율: 62% (전체 평균)


창원의 한 기계 가공 업체에서 25년 일한 김 모 씨(52)는 정부 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6개월 과정이었는데, 배운 건 또 다른 기계 조작법이었죠. "결국 똑같은 일이더라고요. AI가 이것도 대체할 텐데..."


나이도 문제예요. 40대 이상 참여자들의 절반이 과정을 완료하지 못해요.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게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그리고 설령 완료해도 나이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아요.


국민연금이라는 시한폭탄


국민연금은 어떨까요? 이건 직접적인 실업 대책은 아니지만, AI 시대에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국민연금은 일하는 사람들이 은퇴한 사람들을 부양하는 구조예요. 그런데 AI로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연금 재정이 급속히 악화될 거예요.


현재도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2055년으로 예상되는데(국민연금공단, 2023), AI 대량실업이 현실화되면 훨씬 빨라질 수 있어요.


[과거-현재-미래 사례: 국민연금 가입자 변화 예측] 2020년: 가입자 2,200만 명, 수급자 500만 명. 2024년: 가입자 2,300만 명, 수급자 700만 명. 2030년 AI 충격 시: 가입자 1,800만 명, 수급자 900만 명 예상


더 심각한 건 보험료 부담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남은 사람들의 보험료를 올려야 해요. 하지만 이미 AI로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보험료까지 오르면? 악순환이 시작될 거예요.


지자체 복지의 한계


중앙정부 제도만 문제가 아니에요.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시스템도 마찬가지예요.


울산시를 예로 들어보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AI 도입으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어요. 시에서는 긴급 생계지원, 취업 상담, 창업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요.


울산시 전체 복지 예산은 연간 8천억 원 정도인데, 이 중 실업 대책 예산은 200억 원에 불과해요 (울산시, 2024). 실업자 1만 명당 20억 원꼴이니까 1인당 연 200만 원밖에 안 돼요.


정치적 부담도 큽니다. 지방 선거에서 복지 예산을 크게 늘리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 쉬워요. 반대로 기업들은 "규제 완화", "세금 감면"을 요구하죠. 지자체로서는 딜레마입니다.


민간 부문도 한계 노출


그렇다면 기업의 자체적 대응은 어떨까요? 대기업들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삼성전자는 'AI 전환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기존 직원들을 재교육하고 있어요. 현대자동차도 '미래차 인재 양성'에 투자하고 있죠.


하지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아요. 직원 1명을 6개월간 재교육하는 데 평균 2,000만 원이 듭니다(한국경영자총협회, 2024). 1만 명을 재교육하려면 2,000억 원이에요. 웬만한 기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죠.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입니다. 자체 교육 역량도 없고, 비용 부담도 클뿐더러, 애초에 AI 도입 자체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에요. 직원 재교육보다는 인력 감축이 현실적이죠.


해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독일은 'Industry 4.0' 정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직업교육 개혁을 진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독일도 기존 사회보장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고령화 때문에 오히려 AI가 인력 부족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것도 일시적 현상일 뿐, 장기적으로는 같은 문제에 직면할 거예요.


미국은 주정부별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어요. 캘리포니아는 재교육에 집중하고, 텍사스는 기업 유치에 집중하고 있죠. 하지만 연방 차원의 통합된 대응책은 없어요.


흥미로운 건 북유럽 국가들입니다. 핀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등은 아예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어요. 기존 제도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있죠. 그 중심에 '기본소득'이 있습니다.


시스템 전체의 구조적 한계


개별 제도들의 문제를 넘어서, 시스템 전체의 구조적 한계가 있어요.


현재 사회보장제도는 모두 '일자리가 있다'는 전제 하에 설계됐어요. 실업급여는 '일시적으로 일이 없는' 사람을 위한 거고, 고용보험은 '곧 다른 일을 찾을' 사람을 위한 거예요.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 전제 자체가 흔들려요. 일자리가 영구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그럼 '일시적 지원'이 아니라 '영구적 보장'이 필요해지는 거죠.


또 다른 문제는 분절성입니다. 실업급여, 고용보험, 직업훈련, 생계급여 등이 각각 다른 부처에서 다른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AI 충격같이 복합적인 문제에는 통합적 대응이 필요한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해요.


마지막으로 정치적 지속가능성 문제가 있어요. AI 대량실업이 현실화되면 기존 제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거예요. "세금은 계속 내는데 혜택은 못 받는다"는 식으로요. 그러면 사회보장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어요.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 시점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보장제도는 AI 시대 도전에 대응하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어요. 1970년대 건물로 규모 7.0 지진을 버티려는 것과 같죠.


물론 기존 제도들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것도 필요해요. 실업급여 기간을 늘리고, 직업훈련을 현대화하고, 고용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들 말이에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설계가 필요합니다. 20세기 산업사회를 전제로 한 제도가 아니라, 21세기 AI 사회에 맞는 제도 말이에요.


그 새로운 설계의 핵심에 '기본소득'이 있습니다. 현재 시스템의 한계가 어떻게 경제 전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아본 경험이 있나요? 만약 AI로 일자리를 잃는다면 현재 제도로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존 제도의 어떤 부분이 가장 문제라고 보시나요?


[다음 회 예고] 7화: "경제 붕괴의 악순환" - 사회보장제도의 한계가 개인 문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소비 위축, 세수 감소, 사회불안으로 이어지는 경제 전체의 악순환 고리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용어 해설]

고용보험기금: 실업급여와 직업훈련비 등을 지급하기 위해 조성된 기금

수급률: 실업자 중 실제로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의 비율

적립식 연금: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적립해서 나중에 돌려주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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