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법칙을 찾아라

1. 인생법칙의 근원

by 호모 비아토르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나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만의 인생 법칙' 그 변화를 말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억을 소환해서 끄집어내면 인생법칙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온 삶의 경험에 묻어나는 생각, 신념, 감정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물 같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법칙’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주제가 던져지자 부랴부랴 그 앞에 서성이며 골똘히 고민하는 모양새이다.


10대는 인생의 법칙이라는 건 없었다. 그냥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살았다. 맞추어 산 것도 아니다. 내 기준에 열악한 가정형편과 어딜 가도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내 모습에 불평과 원망이 많았다. 그래서 딱히 인생법칙은 없었다. 단지 10대의 나는 그 상황을 도망치고 회피하고 싶었다. 그것도 내 힘이 아닌 어느 날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서 나를 구원해주는 구원 환상을 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고 생각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20대는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덩그러니 나온 기분이다. 전공도 재미없고, 학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긴 하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그렇게 졸업하고 직장생활은 했지만, 그것도 적성에 안 맞았다. 문서작성에는 왜 그렇게 오타가 많고 양식이 틀리는지... 더군다나 숫자 감각도 없어 오류가 많았다. 상사에게 듣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여기서도 나는 재미가 없었다. 어딜 가나 내 자리를 못 찾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외로운 이방인 같은 내가 교회에만 가면 조건 없이 내 존재가 소중하고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무슨 뜬구름 잡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강한 확신이었다.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들으면 지금은 내 모습이 초라하고 볼품없어도 미래에 나는 뭔가 될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외로운 이방인에서 방향을 잡고 내 길을 찾았던 것 같다. 이때 내 인생의 법칙 아니 신념 정도로 해두자. 신념은 굳게 믿는 마음을 뜻한다. 나의 인생 신념은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나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변화의 시작은 편입 준비였다. 편입 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하면서 나는 기존의 나와 싸워야 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충돌하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덤벙대고 서투르기 짝이 없는데 현재의 나는 더 완벽하고 꼼꼼하게 해야 했다. 욕심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하지 않음을 알기에 더 열심히 그리고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신은 늘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금이 떨어지거나 집이 주어지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 왜 나는 이러냐고 따지기 전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지 삶으로 보여줘야 했다.

이때 나의 인생법칙은 “실패는 나를 성장시키는 거름이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서라.”이다. 성경에서 수많은 고통과 납득하기 힘든 상황을 마주하며 실패 자체보다 실패를 해석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떤 일을 단 번에 성공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처음부터 자신감이나 자만심을 가지고 임한 적이 없다. 처음 실패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최소 세 번의 실패는 해야 그다음에 내가 원하는 뭔가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것은 기본이고 수차례의 노력을 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때부터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즉,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어찌 보면 실패는 내 삶의 오리엔테이션이다. 늘 있어왔기에 그것에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어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수련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하고 정신보건 현장에서 일을 했다. 인생은 늘 새로웠고 내 앞에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었다. 때로는 어딘가로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도망갈 수 없었던 것은 도망간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버렸다. 고통스럽고 힘든 그 상황에서 난 온전히 그 자리를 지켜야 했고 홀로 눈물 흘리는 일이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기죽지 않고 당당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고 늘 당당하고 명랑하고 활기차 보이는데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냐고 묻기도 한다. 사실 내 안에 그런 에너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 에너지는 내가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내 기질과 성격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들이 하나님을 통해 내 속에 장착되었다. 신이 있음으로 해서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수 있었고, 고통 속에서도 감사를 찾아내는 재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나는 고통을 재해석하는 것도 나의 재주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라고 믿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40년이 넘게 광야 생활하는 과정에서 기성세대는 다 죽고 다음 세대가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내 인생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주는 대로 명령에 복종하는 400년 동안의 노예생활에서 자유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고 약속의 땅을 준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인생은 광야 학교라고 비유를 한다. 이 말에 공감한다. 나는 인생이라는 광야 학교에 입학해서 매일 낯설고 새로운 과제 앞에서 씨름을 한다. 때론 포기하고 싶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티고 해내려고 한다. 나는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가나안 땅에 입성하여 그 땅을 차지하는 그날까지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 과정이 때론 헐벗고 힘들고 고통이 있을지라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있기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며 다시 일어선다.


나만의 인생법칙 근원은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두웠던 10대를 보내고 20대 때 하나님을 만나 계속적인 인생의 변화를 거쳤다. 그것을 오랫동안 지켜본 친구는 나에게 말한다. “넌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이루고야 마는 아이야.” 그 ‘어떻게든’은 아마도 성실성과 꾸준함일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뭘 이루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삶은 늘 현재 진행형이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뿐이니까.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에서 내린 지 오래이다. 그건 육아휴직 시점부터 멈췄다. 지금은 오늘을 살뿐이다. 뭐가 되는 게 중요하기보다 그냥 오늘을 제대로 사는 게 목적이 되었다.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면 하나님은 매일 밤마다 깊은 단잠을 주시고 이른 새벽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시간을 선물 받는다.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글을 쓰면서 다시금 나만의 인생법칙을 생각한다. 나만의 인생법칙은 '하나님께부터 받은 은총'이었다. 은총이란 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의미한다. 인생을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은혜와 사랑이 크다.


나는 지금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 은총을 알기 전에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셨다. 외롭지 않았다. 내가 속이 상해 감당이 안 되어 그 마음을 기도로 토할 때 주님은 나를 조용히 안아주셨다. 앞으로 주어진 인생길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조건 없이 주신 그 은총을 누리고 이웃과 나누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