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해 1월에 김지수 기자는 ‘마지막 수업’이란 책을 쓰면서 이어령선생을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그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을 알리는 기사를 읽게 될 줄이야.
“깜깜한 밤중이었네. 내가 가장 외롭고 괴로운 순간이지.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어. 누군가 하고 봤더니 노래하는 장사익이야. 그이가 집에서 쓰던 기계를 다 챙겨 와서 내 앞에서 노래를 불러줬다네. 1인 콘서트를 한 거야.”
암 말기환자로 마지막을 보내는 그의 감정을 읽는다. 가장 외롭고 괴로운 순간에 그를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는 이가 있었다. 아직 현실로 맞닥뜨리지 않은 죽음의 순간에 대해서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과거 나에게 가장 외롭고 괴로운 순간은 언제였고, 그때 내 곁에 누가 있었지?에 대한 과거를 회상하고 돌아보게 된다. 과거 그 순간에는 가장 외롭고 괴로운 순간이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축소되고 미화되어 지금은 그때를 그렇게 외롭고 괴로운 순간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다가올 미래에 또 다른 모습으로 변장된 그 순간을 맞이할 때 나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누군가와 그 고통을 나눌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아름다운 세상이 계속 됐으면 좋겠어. 글로 써주게. 사람들에게, 너무 아름다웠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살아온 대로 죽는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그는 그가 말하고 쓴 대로 마지막 시간을 완벽하게 연출해 갔다.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치료약을 일체 먹지 않았다. 선생은 병원 중환자실에 갇히지 않고,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집에서 해를 쬐며 삶 쪽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것은 미련이 아니라 즐거운 책무였다.
살아온 대로 죽는다면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다소 떨리고 두려운 질문 앞에 몸이 굳는다. 말기 암 투병 가운데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치료약을 일체 먹지 않았던 것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함일까? 그것이 죽음이 아닌 삶 쪽의 문을 활짝 열어놓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더 살고 싶은 못내 아쉬운 미련이 아니라면 숨이 거둘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즐겁게 마무리하는 것일까? 자꾸만 기사를 읽으며 질문이 쏟아진다. 나는 죽음 앞에 고통의 통증과 직면하며 마지막까지 즐거운 책무를 다할 수 있을까? 마치 즐거운 사명 같은 느낌이다. 어려운 숙제이다. 책무는 직무에 따른 책임이나 임무이다. 즐거움과 책무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어령 선생은 이생에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과 임무가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생애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의 즐거운 책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 즐거운 책무를 위해 어떠한 위험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면 나만의 즐거운 책무를 꼭 발견하고 내 삶에 안착시키고 싶다. 그리고 나도 마지막 순간을 즐거운 책무와 함께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은 것은 책이었다. 쓸 수 없을 때 쓴다던 세 줄 일기 ‘눈물 한방울’을 비롯해 딸 이민아 목사에게 쓴 시와 여러 편을 모은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20편으로 기획된 ‘이어령 대화록’과 이미 앞서 대장정을 시작한 ‘한국인 이야기’ 등이 차례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쓰기 위해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여러 차례 내게 농담처럼 말했었다. “3월이면 나는 없을 거야.”
이어령 선생은 자신의 마지막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예견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생애 마지막까지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작은 감기 하나에도 예민해지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이불 속을 헤맨다. 나와 대조해하면 그는 정말 육체의 힘이 아닌 정신력으로 마지막을 버틴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육체는 해골처럼 바싹 말라있지만 영혼만은 영롱하게 빛나지 않았을까?
오는 3월 15일은 따님인 고 이민아 목사의 1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임종 하루 전, 지난 주 금요일(2월 25일). 선생은 출판사 열림원 김현정 주 간에게 전화를 걸어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의 서문을 불러주었다. 헌팅턴 비치는 살아생전 이민아 목사가 살던 미국의 바닷가였다.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 2022년 3월 이어령.’
이어령 선생의 딸 역시 10년 전 암 투병 끝에 생을 마쳤다. 이후 딸을 향한 마음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라는 책에서 생전에 딸에게 못 다한 말을 글에 표현하며 그리움과 사랑을 나타냈다. 이민아 목사의 마지막 소원이 있었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다. 이제 이어령 선생은 10년 전 딸이 갔던 그 길을 간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어떤 마음일까? 그렇게도 그리워하는 딸을 만날 생각에 설렐까? 아니면 남은 가족을 생각하며 아쉬울까? 아무래도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 것 같다.
3월을 며칠 앞두고, 그렇게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3월을 명명한 후, 선생은 떠났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야.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화려한 한가운데. 고향이지.”
2월 26일 정오 경. 환한 대낮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선생은 죽음과 따뜻하게 포옹하며 자신의 말을 완성했다.
이어령 선생은 죽음을 두려움과 어둠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것.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 고향...
나는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모태에서 나오기 그 이전의 본래의 고향으로 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신을 믿기에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 같다. 아픔과 고통도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기사를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생의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나는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궁금하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을 거울삼아 나도 즐거운 책무를 다하며 생애 짊어진 육체의 고통과 괴로움을 끌어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오늘 하루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죽음을 인식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위해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삶은 끝이 있기에 의미 있는 인생이 존재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죽음은 신이 주신 축복일 수 있다. 오늘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내라는 즐거운 책무이지 않을까? 나에게 미션이 생겼다. 나도 이어령 선생처럼 즐거운 책무, 다른 말로 나에게 즐거운 사명은 무엇인지 찾고 발굴해야겠다. 고통과 아픔을 딛고서 그 즐거운 사명을 마지막까지 다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지수, “‘너무 아름다웠어요. 고마웠어요.’ 이어령의 마지막 말들”, 조선비즈, 2022년 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