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나이 듦에 대하여 얼마나 생각을 하고 있었나?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노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솔직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렴풋이 나도 언젠가 늙겠지 정도의 아주 추상적인 생각이었다. 오늘 프랑스 작가를 통해 나이 듦과 노인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나도 언젠가 지금의 중년을 거쳐 노년으로 접어들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미리 예측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김지수 기자는 프랑스 작가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읽고 직접 작가와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하여 작가의 생각을 전달해준다.
‘생은 판에 박힌 되풀이와 놀라움이라는 이중구조를 취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은 저자의 말처럼 판에 박힌 되풀이다. 그러나 일생이 매일 반복되기만 하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곁들여진 땡고추처럼 때론 맵고 화끈한 놀라움들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시간은 희한한 우군이 되었다. 우리를 죽이지 않고 떠받친다... 과수원 같기도 하고 사막 같기도 하다.’
나에게 시간은 우군인가? 적군인가? 늘 우군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우군이 되기도, 적군이 되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따라 시간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지금 나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우군이다.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육아휴직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매일 뭔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살더라도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 이유가 생긴다... 이것이 카운트다운의 이점이다.’
누군가에게 생이 너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짧고 치열하게 느낄 것이다.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혼합되어 있다. 때로는 지루하게, 또는 짧고 강렬하게 느낀다. 그것은 상황과 감정, 인간관계 등에 섞여있어서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 삶이 곧 끝날 거라고 느끼면 분명 더 열심히 살려는 하는 의지와 움직임이 생길 거라는 예측은 된다.
‘삶은 늘 영원한 도입부요, 점진적 전개 따위는 끝까지 없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되 고정 거주지는 없는 노숙자들이다.’
삶이 늘 영원한 도입부라는 의미는 시작만 하다가 끝난다는 말인가?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인가? 문장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구하기 위해 이 책이 읽고 싶어 진다. 다만 우리는 정처 없이 떠도는 노숙자라는 글에서 노숙자의 삶을 생각해본다. 안전하고 고정된 곳 없이 떠도는 것은 곧 매일 새로운 환경과 사람이 기다리는 인생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삶을 바라본 것일까? 어딘가에 늘 안주하고 안전함만 추구하지 말고 매일 새로운 환경을 의미하는 걸까?
이어령 선생이 정오의 분수처럼 죽음을 생의 한가운데로 초대해 감각하고 사유했다면, 파스칼은 사랑과 일을 노년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여 임종 전까지 ‘욕망할 것’을 권고한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는 엄숙한 생명의 질서만큼이나 ‘젊은이도 늙은이도 욕망 앞에 평등하다’는 파스칼의 선언은 정신이 얼얼할 만큼 센세이셔널했다.
노년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자 다르다. 욕망이라는 단어는 내가 부르기에 거북하고 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욕망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욕망하라는 말인가?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계속 먹어도 갈증이 나서 자꾸 찾게 되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면? 계속 갈증을 느끼는 건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욕망하기 전에 욕구 지연을 너무 잘하는 게 특기다 보니 욕망을 먼저 밖으로 펼쳐보는 시도를 해야 할 것 같다.
오십이 넘었다면 당신은 이미 사랑, 가족, 직업 등에서 많은 의무를 치렀고 시니어로 불릴 겁니다. 그때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어요.
앞으로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여전히 또 다른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남은 시간을 얼마나 잘 사용할까? 적어도 50년은 지나야 ‘되어야 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생이 자기 앞에 펼쳐집니다.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도 50이 넘으면 인생의 많은 의무를 치르고 또 다른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될까? 이것은 아마 동서양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서양은 자녀들이 스물이 넘으면 독립해서 떠난다. 그러나 한국은 자녀들이 대학, 대학원, 결혼, 결혼 이후 손주 양육까지 노인의 삶에 자녀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기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자녀들의 삶에 귀속되어 살아가는 경우를 본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정체성을 먼저 물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노인이 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자녀의 부탁을 거절하고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의문과 질문이 올라온다.
에너지를 쓰는 게 곧 삶입니다. 여러분은 10년을 주기로 스스로를 거침없이 재구축해야 합니다. 숫자가 바뀔 때마다 안주하지 말고, 위험을 무릅써도 됩니다. 자기로 사는 편안함과 자기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인지해야, ‘나’로 살 수 있어요. 만약 도전할 에너지가 없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생존을 증명하는 반짝거림을 잃어가는 중입니다. 죽기도 전에 사라질 이유가 있나요?
누군가 에너지는 쓰면 쓸수록 더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개인의 건강과 상태에 따라 에너지를 쓰는 정도를 적당히 조절할 필요를 느낀다. 영원히 젊은 육체를 보장할 수 없다. 나도 30대까지만 해도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40을 찍자 내 몸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너무 건강을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에너지 쓰는 유무의 전제는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턱대고 에너지를 쓰다간 에너지 고갈 상태를 겪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에너지를 너무 아끼는 것도 삶은 소멸한 것이라 볼 수 있으니 어떻게 삶에 에너지를 쓸까?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편안함 속에 안주하고 싶은데 ‘자기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인지해야 나로 살 수 있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편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나의 존재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성 안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철학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삶을 배우는 것은 좋아한다. 나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학생처럼 배우는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사람의 일생을 하루의 여정과 계절로 비유했다. 사계절이 다르고 하루의 시작과 중간, 끝이 다르듯 우리의 삶도 다 다르다. 단지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면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고 느낄 수 있다. 이에 늘 내 삶을 깨우고 자각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시간 속에서 나의 주체성을 찾는 최고의 방법은 사랑을 하는 겁니다. 살아있으려면 사랑을 나누세요.
어딜 가나 접촉점은 사랑이다. 모든 심리와 철학은 사랑으로 귀결된다. 사랑을 하는 건 맞는데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랑의 방법이 다 다르다. 때론 왜곡되고 그릇된 사랑도 있었다. 그래서 건강하고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일례로 스토커들은 자기들이 상대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굉장한 착각이고 자기 오만이다. 사랑이 아니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고 타인의 감정과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배하려 든다. 이것처럼 우리는 먼저 사랑을 하기전에, 어떤 사랑이 건강한 사랑인지 느끼게하고, 가르치고 알려주어야 한다.
미끄러지는 시간을 붙잡을 순 없지만, 행복한 순간은 항상 ‘앙코르’를 원해요. 반복이 시간의 기약이고, 우리가 좋은 환상에 몰두할 수 있는 동안은 소망이 있어요. 100세 노인도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내일을 말합니다. 그러니 죽음보다 지금의 삶에 더 집중하세요. 우리는 내일 깨어날 테고, 내년에도 새해 인사를 나눌 겁니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나에게 죽음은 삶을 더 생명력 있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재료가 된다. 세상에 태어나면 한 번은 죽고 끝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을 의미한다. 그렇게 제한된 이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언제 내가 죽을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자각하는 삶은 오늘 하루 집중해서 살아가는데 자원이 된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는 것입니다.
분명한 건, 나이 들수록 반복하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살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사계절을 맞는다...(중략) 그 반복 속에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제 각자의 미세한 파동을 만들어간다.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매일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질문한다. 매일 새롭지 않은 삶에서도 이러한 동일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던지는 새로운 다짐이다. 반복된 일상에서 새로운 일상을 발견하고 감사와 기쁨의 꽃을 피우는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시시한 일상 ‘루틴’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한다. 반복은 불모성과 생산성의 양가적 힘을 지녔다고. 반복의 영성을 지닌 성실한 사람들, ‘바른생활 루틴이’라는 별명을 지닌 요즘 세대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통찰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루틴’이다. 매일 반복되는 고정 루틴이 나를 지켜내고 하루를 더 충만하게 살 수 있게 인도해준다. 시간 속에서 반복이라는 루틴은 나를 멈추게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루틴은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된다.
반복에는 두 가지 면이 있어요. 하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끔찍한 루틴 또 하나는 정반대로 인생을 계속해서 다시 시작하려는 시도입니다.
좋은 의미의 반복은 숨은 재능을 찾게 해 줍니다. 자신을 흉내 내는 과정에서 혁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나는 오늘 어떤 고정 루틴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무런 의미 없는 끔찍한 루틴이란 무엇일까? 루틴이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이다. 쉽게 말하면 습관과도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좋은 습관을 의미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식적인 노력과 연습을 거쳐 몸에 점차 베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루틴의 과정은 새롭게 다시 시작하려는 시도를 말하는 걸까? 숨은 재능을 찾는데서 반복은 유익하다고 한다. 자신을 흉내 내는 과정이란 매일 자신을 찾아가고 재발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창조의 샘이 마르지 않는 ‘자기 쇄신의 기질’을 가진 노인들이 많아진다.
쇄신이란 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쇄신이 마치 성장처럼 느껴진다. 인생을 살아온 경륜이 높아질수록 쇄신보다는 안정을 찾기 마련이다. 그것을 역행해서 쇄신의 길을 가려면 자기 관리와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나도 독서나 글쓰기를 하면서 쇄신 혹은 성장의 길을 지향하지만 막상 현실의 변화 앞에서는 움츠리고 뒷걸음질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자기 쇄신의 시간을 만들어가기 위한 당신만의 하루 루틴... 루틴으로 나를 충전하고 다른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리듬을 만듭니다.
자기 쇄신의 시간에 루틴의 중요성을 짚어준다. 쇄신이라고 하면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듯이 변화무쌍하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매일 모험을 추구하며 색다른 경험들이 뷔페에 차려진 다양한 음식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루틴의 힘을 강조한다. 나 역시 나만의 시간에 일정한 활동을 규칙적으로 해 나갈 때 성장과 성찰이 동반됨을 느낀다.
‘일, 참여, 공부’ 이 3가지가 우리를 맥없는 시간에서 구원한다. 일을 통해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소속감, 공부는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만드는 ‘자기 구제’의 핵심입니다. 3가지를 통해 삶은 단 시간 내에 충만해질 수 있어요.
자기 구제의 핵심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보며 프로이트의 행복의 조건이 머릿속을 스친다. 프로이트는 행복의 조건으로 일, 사랑을 말했고 최근에는 여가가 추가되어 행복의 3요소를 이룬다. 구제는 자연적인 재해나 사회적인 피해를 당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뜻이다. 자기를 스스로 구제한다는 용어가 신선하다. 나는 나를 어떻게 도와주고 건져내고 있는가? 나를 위한 구제 요소는 무엇일까? 건강, 일, 사랑, 여가(취미)가 떠오른다.
다시 젊어지지 못해도, 탐구와 관찰의 정신을 유지하면 굳어버린 삶에 맞서서 경탄의 태도를 가질 수 있죠.
육체는 어차피 사람마다 속도의 차이가 있긴 해도 늙는다. 역으로 젊어지려고 애쓰는 수고보다 오히려 탐구와 관찰의 정신을 유지하고 키우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충만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쪽 면에서는 유혹의 소리가 들린다. 늙고 있는 외모를 보면 서글픈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흔들리는 인생에서 중심을 잡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호기심으로 일상을 재발견하는 탐구와 관찰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젊은이와 늙은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랑, 건강,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욕망.”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해야 사랑도 하고 욕망도 추구할 수 있다. 건강을 잃으면 내 앞에 놓인 음식앞에서도 맛을 잃어버린다. 내가 매일 걷기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건강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충만했고, 악몽을 관통했고 보물을 받았다. 당연히 받았어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상처받는 존재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 상처를 끌어안고 성장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악몽을 피하지 않고 바로 뚫고 들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생이라는 보물을 발견하는 것일까? 조건 없이 내게 주어진 삶이라는 선물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완벽한 구조는 절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무수히 많은 반복과 노력, 유사한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번에 성공하기를 꿈꾼다. 나 역시 타고난 재능과 탁월함이 있기를 희망하며 단번의 성공을 꿈꾸었다. 그렇지 못한 나를 발견하며 좌절했다. 성공하는 그들의 단면만 바라보고 질투와 시기심을 갖기도 했다. 세상을 살아보니 공짜는 없었다. 어떤 불법과 사기 없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성장하려면 수많은 시간 앞에서 나 혼자만의 외로운 투쟁(반복)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지난해 5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아무리 좋다 해도 매일 글쓰기가 잘 되는 게 아니었다. 글감이 안 떠오르고 손이 무엇을 써야 할지 길을 헤맬 때 나는 방황하고 좌절했다. 그럼에도 잠시 숨을 고르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무수히 많은 반복과 노력에 양가감정을 느낀다. 이 길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기에 버릴 수도 없다. 고로 불편한 동행과도 같다.
“행복한 노화는 절대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대신 놀라움과 발견의 연장 선상에서 역동적이고 요란스럽고 또 풍족해야 합니다.”
마치 행복한 노년에는 평화를 꿈꾸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작가는 익숙함과 안전함을 포기하고 매일 호기심으로 새로운 일상을 발견해 나가는 삶을 강조한다. 나이가 들어 예전 같지 않은 건강을 느끼면서도 익숙함을 빠져나온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을 감탄과 경이로 물들이기 위해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건강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이미 잃어버린 건강을 한탄할 필요는 없다. 잃어버린 건강에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는 힘을 믿는다. 내가 있는 현실의 자리에서 한 가지씩 시도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 다 사정이 다르다. 어떤 기준으로 일관되게 방법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나이 듦과 노년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다. 어떤 분은 나이 40에 우울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나이 60에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사회가 제시하는 노인이라는 개념에 주눅들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이 듦의 의미를 탐색하고 노년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나다운 노년을 보내기를 꿈꿔본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당신의 묘비에 새길 문장을 말씀해주시죠.
“I loved life, it rewarded me a hundredfold(나는 인생을 사랑했고, 인생은 나에게 백배로 갚아줬다).”
나는 내 묘비에 어떤 문장이 새겨지길 원하는가? “나는 하나님 품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이 땅을 떠난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죽은 삶이 아니라 진짜 하루를 살더라도 살아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와 내 주변을 사랑하고 모든 상황에서 배워나가는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김지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늙어도 욕망 줄지 않아... 살아있으려면 사랑하라” 佛 최고 지성의 조언, 조선비즈, 2022년 2월 5일
1. 새롭게 알게 된 어휘: 관조, 담론, 불모성, 양가적, 쇄신
-관조: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
-담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함.
-불모성: 땅이 거칠고 메말라 식물이 나거나 자라지 아니하는 성질.
-양가적: 동일 대상에 대한 상반된 태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쇄신: 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함.
2. 나중에 써보고 싶은 어휘: 통찰, 사유, 분별력, 이정표, 재구축, 속절없이
-통찰: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사유: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이정표: 어떤 일이나 목적의 기준.
-재구축: 허물어진 구조물이나 진지 따위를 다시 쌓거나 쌓아 만듦.
-속절없이: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3. 뜻은 알지만 내 글에서 써본 적 없는 어휘: 이중구조, 되풀이, 권고, 앙코르, 기약, 폐해, 농밀
-되풀이: 같은 말이나 일을 자꾸 반복함. 또는 같은 사태가 자꾸 일어남.
-권고: 어떤 일을 하도록 권함. 또는 그런 말.
-폐해: 폐단으로 생기는 해.
-농밀하다: 짙고 빽빽하다.
-앙코르: 연주회에서 연주자가 모든 곡을 마친 후 다시 올라와 연주를 바라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