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엄마랑 엄마친구들과 함께 모델하우스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드라마나 잡지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예쁜 인테리어들과 정리정돈에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곳은 마치 나 자신을 디즈니 성 속의 공주가 된거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했다.
이때의 경험이 강렬했던건지 나는 스무살때부터 독립하면서 내 공간의 항상성에 집착해왔다. 물건은 항상 원래 있던 자리에 있어야 하고 바닥은 머리카락 한 올 돌아다니는걸 원치않았다. 화장실은 물때 하나 보이지 않아야 하며 집안에서 늘 은은한 향기도 머물길 원했다. 그럼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모델하우스의 그림같은 일부분이 되어 살아가길 바랐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처음엔 늘 다 그렇다며 코웃음을 치다가 지속되는 나의 강박증에 부질없는 짓이라며 과하다고 우려했다. 나 또한 일과 취미활동에 지쳐 돌아와서도 청소를 내려놓지 못해 지친 몸을 꾸역꾸역 움직일 때마다 다 내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나에게는 그렇게나 힘든 일이었다. 나는 독감이 걸려도 코로나가 걸려도 어떤 아픈 병에 걸려도 청소를 놓지 않았다.
그러다 인생엔 예고편이 없듯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날이 예기치 못하게 왔다. 나는 무려 3일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청소를 포함하여.
정신이 마치 신체의 모든 퓨즈를 끊어낸 것처럼 나는 침대에 누워 꼼작도 못할거 같았다. 그렇게 기본적인 배설활동 조차도 안할 수 있다면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안하고 증발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놈의 화장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바닥에 발이 닿을 때마다 너무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이 청소도 안한 바닥에 발이 닿고 그 발을 침대에 올려야 한다니.
그 마음 하나가, 고작 나의 오랜 강박이 결국 물먹은 솜처럼 무겁던 내 몸을 움직여 청소를 하게 했다. 신체의 퓨즈를 다 끊어버릴 땐 언제더니 역설적이게도 정신이 끝까지는 가지 말라고 신체를 다독이는 모양새였다. 청소를 하는 내내 나는 스스로의 강박에 질린다고 느꼈다가 점점 지저분한 집이 아니라 지저분했던 내 마음이 정리가 되고 있구나 라는걸 알았다.
우울은 수속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몸소 깨달았다. 청소를 하고 몸까지 깨끗하게 씻고 나오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내 집이 그렇듯 나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투명하게 깨끗해졌다. 스스로 질린다고 고쳐보고 싶다고 느꼈던 나의 오랜 강박에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느끼던 순간이었다.
정신과 신체는 너무 밀접하게 서로 교류하며 나 자신을 나아가게 한다. 신체가 무너질때 정신도 또한 무너질 수 있으나 정신이 신체를 다독여 이끌어 나가게 할 수 있다. 신체도 역시 정신이 무너질때 모든 기능을 꺼버릴 수 있지만 ‘조금의 움직임‘이 정신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 나에게는 청소가 이 ‘조금의 움직임‘에 굉장히 큰 지분을 차지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 얼마나 많은 무너짐이 있게 될까.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또 다 내려놓고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을거다. 나는 결국 청소를 할거고 그게 모든걸 깨끗하게 해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