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친구들과 놀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주황빛 노란색으로 물들던 놀이터 모래바닥과 저멀리 아파트 창문에서부터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 내일 또 만나자는 친구들의 손가락 약속들이다. 그땐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을 뿐더러 서로의 집전화번호를 알지 못해도 우리가 다음날 그 시간 그 장소에 다시 모여 놀거라는 믿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핸드폰도 생겨나고 세이클럽, 싸이월드 등 여럿 온라인 sns 개념들도 등장했으나 친구들을 만나는 데에는 약속의 피치못할 변동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꾸준히 만나야 했고 그것이 의무감으로 느껴진 적 또한 없었다. 지금도 친구들은 나를 이루는 요소들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건 틀림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달라진걸까.
학교에서 봐도 하교 후에 또 보아야 했던 우리들은 학교가 달라져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보았다. 그러다 사는 지역이 달라지자 한달에 한번이 되었고 그것이 사실 어떤 규칙이 아니었던걸 깨닫자 서서히 우리의 만남 빈도는 매우 줄어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취직, 결혼, 출산 등등. 그 모든 변화들 속에도 우리는 함께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게 우선순위가 계속 해서 밀려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아끼고 사랑하니까 그만큼이나 서로의 상황을 이해했고 이해한 만큼이나 만남의 빈도는 줄어들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 모두 모임을 만들어야겠다고 너도 나도 의견을 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임통장도 생겨났고 매달 모임비도 내게 되었다. 그게 벌써 수년이 흘렀다. 우리는 그동안 의무감이 더해진 모임 약속을 꾸준히 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가끔 이 모임약속을 갈 준비를 할 때마다 느껴지는 의무감에 씁쓸해질 때가 있었다. 매일매일 봐도, 하루 종일을 함께해도 즐겁기만 할 때가 있던 우리가 이렇게 가끔 보는데도 만나기 전부터 묘한 의무감에 지쳐야 하는건지.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규칙성을 띄는 약속 외에는 만나기 어려워진건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야속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변화를 또 늘 그래왔듯 이해하며 넘어가고 끝도 없는 배려를 했다면 우리의 관계는 결국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갑자기 막연히 생각해보니 아찔했다.
친구들이 “모임약속을 만들자, 모임통장을 만들어야겠다” 하며 으쌰으쌰 의기투합을 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래 그러자하며 동의했을뿐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못했다. 나보다 성숙했던 그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결국 우리의 관계를 삶의 우선순위에 계속 밀려나게 해, 소홀해지다못해 희미해지게 할 수 있을거라는 걸 알았던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약속에 나갈 준비하는 과정이 더는 귀찮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그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것처럼 그들도 역시 우리의 관계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과거 우리의 모든 만남이 자연스러웠던 만큼 우리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만남의 빈도가 줄어들었고 그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남의 존재 자체도 소멸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연스러움에 의무감으로 태클을 걸 만큼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중요했던 거다.
그렇게 서로를 아끼는 만큼 이해하고 배려하느라 만남이 줄어듦을 서운해하지 않던 우리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만을 이기적으로 생각해 서로에게 만남의 의무감을 부여하다니. 참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구속이지 않을까.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계속 늘어가는 구속적인 모임으로 바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