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사실 매일같이 밝다. 하루하루 공전에 의해 해가 뜨고, 자전에 의해 시간대가 바뀔 뿐. 우리는 언제나 해로운 새를 본다.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는 대인류로서 이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가. 인류가 가장 잘하는 것은 가만히 있던 혹은 있었던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값을 매기고, 의미를 더하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에는 거부감이 생기는 성향이다. 그 거부감은 나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주로 이런 성향은 여느 성향과 다르지 않게 무거운 닻처럼 담금질을 거쳐 청소년기에 확립된다. 따지고 보면, 이때가 참 중요한 시기긴 한가보다. 따지고 보면. 나는 어릴 적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가족들이 다 잘 때에도 티브이를 켰다. 얼마 전에는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들고 가족과 저녁식사를 예약했다. 괜히. 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가는 순간까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새해로 돌아가서, 나는 기념일을 기념일답게 보내야 한다는 조부모님 밑에서 크고, 기념일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가정에서 새롭게 자랐다. 처음 만난 종교가 내 신을 결정하듯, 나는 기념일을 기념일답게 보내는 것이 더 옳다고 아직까지 믿고, 행동한다.
다시 새해다. 해가 여러 번 뜨는 하루다. 충분히 자고, 적잖이 무거운 것을 들었다 내려놨고, 보고 싶었던 영화도 봤다. 거의 방치되었던 위스키도 비웠다. 쓸데없는 글도 쓰리라.
이동진 평론가를 좋아하는가? 존경에 마지않더라도 그가 했던 말은 꽤나 유명한데, '책은 기본적으로 이성에 가까워 차가운 물과 같고, 영화는 기본적으로 뜨거운 속성을 가져 술과 같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체로 뜨거운 듯하다.
차가움은 무엇이고, 뜨거움은 무엇인가? 이성과 감성을 논하기 전에 말이다. 비유는 언제나 비근한 것들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온도는 분명 당신이 가장 卑하고 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흑과 백을 나눠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보는 시청자라면 은연중에 참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음식의 온도감에 대한 우려가 들기 마련이다. '저 음식은 지금 나가기엔 너무 늦었어!(일러!)' 같이.
그렇다, 뜨거운 음식은 식는다. 뜨거울수록 빠르게 식는다. 그리고, 메인에 가까운 음식을 할수록 더운 음식이 주를 이룬다. 힘을 줄수록 뜨거워지기도 한다. 튀기고, 덥힌 음식을 차갑게 식힌 음식도 있긴 하지만 요리에 지식이 없는 내가 보기엔, 샐러드는 차갑고 스테이크는 뜨거운 것이 일반적이듯 그렇다.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뜨거운 음식이 온도감이 낮다거나, 익힘이 부족하다면 그 디시는 가차 없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뜨거운 것은 식는다. 그리고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 존재한다. 나는 뜨거운 것의 온도감은 다시 말해 '끊김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결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끊김이 없이 뜨거움이 유지되어야 그 가치가 이어진다. 이동진 평론의 말을 빌리면, 영화는 불의 속성이다. 영화도 끊어서 보면 그 재미와 가치가 덜하다. 끊어짐은 온도를 떨어뜨린다. 책은 한기의 속성이다. 물론 한 번에 몰입해서 치고 나가야 더 좋은 책도 있지만, 분명 끊어가도 영화보다야 그 맛이 덜 헤쳐지는 듯하다. 이렇듯 이성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가더라도 기억, 사고, 이해가 이어지는 한 그 맛의 보존이 용이하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 또는 사랑, 분명히 섹스는 끊김이 주는 대미지가 심하다.
돌아와서, 나는 우리가 어떤 날을 특정 지어 품는 소망 자체가 대부분 뜨겁다고 생각한다. 특히 새해에는 이러한 뜨거움이 나에게는 불쾌하게까지 느껴진다. 당연한 소망들이 지나치게 뜨겁다. 건강을, 행복을, 지혜를 이렇게 뜨겁게 갈구한다는 것은 이어지고자 하는 바람이 아니라, 끊어지기를 앞둔 예측처럼 느껴진다.
끊어짐이 없는 뜨거움은 곧 차가움을 뜻한다. 뜨거운 음식을 제때 먹는 것은 미덕이다. 차가운 음식도 상한다. 차가운 음식을 제때 먹는 것 역시 미덕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하지만 뜨거운 것들은 그때에 더 심한 구속을 받을 뿐이다. 새해 소망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그 구속에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이 없는 쾌락과 성취는 없으니까. 여러분이 새해의 소망을 빌었다면, 그 소망이 꼭 반드시 맛있을 때를 지나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