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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니 Feb 01. 2023

나의 털복숭이 친구_4

아프냐, 나도 아프다.

또리는 현재 세 군데가 고장 났다.

고추와 이빨과 심장.

처음 얘기를 들었던 건 고추였다.

정기 검진으로 찍어본 엑스레이에서 일명 '크리스털'이라 불리는(요도를 막고 있는 돌들을 왜 그런 예쁜 이름으로 부르시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것들이 또리의 고추에 몰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게 점점 커지면 아이가 쉬아를 보기 힘들어지고 여러 가지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로부터 또리는 방광에 도움을 준다는 사료 하나만 지정하여 먹게 되었는데, 매일 2번씩 먹는 그 밥이 지루하지도 않은지 맨날 처음 먹는 애 마냥 먹어줘서 어찌나 고마운지 모른다.


두 번째는 이빨이다.

무지했던 탓에 강아지들도 칫솔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저 아침저녁 사료 급여 후에 껌을 성실히 주는 것으로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또리의 이는 점점 나빠져갔나 보다.

3살 때쯤 처음 했던 스케일링 이후 7살에 두 번째 스케일링을 진행했는데, 그때는 이미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결국 스케일링 과정에서 2개의 치아를 발치하였고, 얼마 전 받은 정기 검진에서는 흔들리는 이가 둘이나 있어 수의사 쌤이 직접 손으로 뽑으셨을 정도였단다.

그 사이 나름대로 칫솔질을 해본다고 브러시, 손가락 칫솔, 손톱으로 치석 긁어내보기 등등 다양한 걸 도전해 봤으나 버둥대는 강아지를 이겨내지 못했던 나에게 화도 나고 진작에 살피지 못했다는 자책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사람도 그렇듯이 또리는 원래, 선천적으로 이가 안 좋은 아이 같아요. 남은 이라도 써야 하니 딱딱한 건 주지 마시고 최대한 얇거나 작게 조각내서 간식도 주세요"

또리의 상태를 듣고서 내가 심란해하니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었다.

씹는 재미가 얼마나 큰데, 남은 여생동안 또리가 그걸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심장.

또리는 7살에 심장병 진단을 받았다.

6살 무렵부터 선생님이 청진을 해보시고,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다며 언젠가 검사를 진행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설마 하는 마음에 미루고 미루다 '이제는 해보면 좋겠다'는 말씀에 피검사와 초음파를 봤는데 심장병 2단계를 선고받았다.

"심장병은 4단계까지로 구분하는데 그래도 손을 쓰기 어려운 3단계 이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지금부터라도 약 먹고 정기검진으로 계속 상태를 체크해 봐요"

어찌나 울었는지.

경험이 없어 심장이 아픈 게 뭔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점과 이 작은 게 말도 못 하고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니 정말 하루종일 눈물이 났다.

그 이후 또리는 매일 아침저녁 식사 전에 약을 먹는다.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하루도 빼놓지 말고 먹어야 하는 약이라고 한다.

다행히 또리의 간과 콩팥이 잘 버텨주고 있어서 심장약은 현재까지 무리 없이 먹이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고구마에 약을 섞어주기 시작한 이후부터 밥보다 약에 더 집착하는 강아지가 되었다)

심장병 진단 이후 우리의 산책도 조금은 달라졌다.

일단, 또리의 의사가 최우선.

잘 가던 그가 갑자기 멈추고 쳐다볼 때, 전에는 가던 길을 마저 가자며 재촉하기 바빴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쉬어간다.

그러다 "갈까?"하고 물어보고 그가 쉬이 움직이면 다시 산책을 재개한다.

물론 이런 산책은 전에 비해 움직임도 더디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조금 더 편안하고 고즈넉한 느낌이라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바깥 온도를 체크하게 되었다.

본래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외출을 자제했었는데, 또리의 심장병 진단 이후부터는 미세먼지가 폐까지 안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 짧은 산책이나 집에서의 노즈워크를 택하는 편이다.

그리고 아주 추운 날에는 한낮의 산책을, 아주 더운 날에는 야간의 산책을 택한다.

입으로 숨을 쉬는 강아지기 때문에 극단적인 온도는 심장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루 두 번 약을 챙기고 산책 때마다 또리의 컨디션을 살피고, 매일의 날씨 어플을 켜서 온도와 미세먼지를 체크하는 일.

가끔은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해 이 정도쯤이야.

이런 작은 수고로 그의 심장이 보다 천천히 아프고 오래도록 나의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나는 더한 것도 기꺼이 할 자신이 있다.

얼마 전, 좌심실에만 문제가 있던 또리는 우심실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병은 한번 발병되면 약을 쓰더라도 진행을 늦출 뿐, 완치가 어렵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나머지 한쪽도 고장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쓰린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처음 또리가 심장병 진단을 받던 날, 당황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선생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했다.

"제가 너무 무뎠어요. 좀 더 살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을 때 바로 검사할걸. 차일피일 미루다 또리의 심장만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요"

그때 돌아온 선생님의 대답은 그 어떤 위로보다 묵직하고 따뜻했다.

"보호자님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또리는 보호자님처럼 좋은 분을 만나서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고 아픈 곳도 발견했잖아요. 약 먹고 지켜보면 돼요. 제가 기르던 강아지도 8살에 심장병 진단을 받았는데 그 후로도 잘 살았어요. 또리랑도 오래오래 같이 계실 수 있어요"

순간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눈이라도 마주치면 오열을 하게 될 것 같아 건성으로 듣는 체하며 고개를 떨궜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선생님의 강아지는 사실 심장병으로 인해 버려진 아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전에 계시던 병원에서 만난 보호자의 강아지였는데, 심장병 소견을 듣고는 보호자가 치료를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단다.

그러고는 다음날 아침, 동물병원에 자신의 강아지를 메어두고 사라진 것이다.

출근길에 목도한 광경에 황당한 선생님을 두고 강아지는 드디어 아는 사람이 왔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반겼고, 그렇게 둘은 가족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관리하는 강아지가 아플 때면, 선생님도 괜히 보호자에게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말 그대로 우리는 그들의 '보호자'인데....

왜 정작 그들이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수많은 보호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저버리는 건지 의문스럽고 화가 난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또리에게 바라는 건 하나다.

지금처럼만 건강하고 혹시라도 몸이 안 좋으면 숨지 않기를.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채고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 주기를.

그와 함께할 모든 새해에 비는 나의 소망은 '또리의 건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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