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나는 처와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오래된 엑셀 승용차에 온갖 캠핑 장비와 압력 밥솥, 책 한 박스까지 때려 싣고서. 부산에서 밤 페리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들어가 40일 간 일본을 도는 본격적인 캠핑 투어였다. 막연하기 짝이 없는 새 인생 여정의 돌파구를 찾고자 기획한 여행이었다.
무 정보, 무 계획에 지도와 감각에만 의지해 노지 캠핑 여행을 했는데 처음이다 보니 많은 문제가 생겼고 처와의 불화로 마음 고생도 심했다. 하지만 계속 밀어붙여 거기에 적응이 되자 갑자기 평온한 무중력의 느낌이 찾아왔다. 모든 구속과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 아득히 먼 우주에 홀로 있는 듯했다.
그것은 차량과 텐트로 시스템에서 벗어나 내면과 일상에만 깊이 몰입한 덕분이었다. 그로서 나는 어떻게 세상을 빠져나갈 지 감을 잡았고, 앞으로 천착할 대상이 내면과 일상임도 깨닫게 됐다. 이 여행에 관해 쓴 책 제목과 부제가 ‘캠핑 노마드’와 ‘내면과 일상의 오지를 찾아서’가 된 것도 그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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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 후 우리는 새로운 실험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1년 12곳’이란 타이틀로 달랏, 푸켓, 포카라 등 총 열 두 곳에서 한 달씩 사는 장기 노마드 프로젝트였다. 더 넓은 시공간을 무대로 내면과 일상을 더 깊이 탐험하고 싶었고, 그걸 콘텐츠로 책을 써서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내면과 일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그마저 문제가 생겨 6개월 만에 접어야 했다. 그래도 얻은 게 많았다. 달랏에서는 처음 모터사이클 캠핑을 했고, 푸켓에선 리브어보드 다이빙 투어를 했다. 지금의 내 삶이 만들어지는 데에 꼭 필요한 결정적 경험들이었다.
또 그를 통해 확실히 깨닫게 된 게 있었다. 최소 몇 년은 나와 삶의 여정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출가하듯 주변을 싹 다 정리해야 한다는 것. 지금 삶과의 병행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제 잠깐 찍고 돌아오는 식의 우주 관광은 마감하고, 참나와 참삶의 먼 우주로 편도 여행을 떠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