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 ] 불운에 대처하는 유쾌한 견해
2010년 11월 23일 초저녁 무렵이던가, 오랜만의 귀국이라 나는 다소 들뜬 기분으로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도어가 열리는 순간 뭔가 싸한 분위기를 느꼈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여 입국장 대형 TV를 보고 있는 뜻밖의 풍경. 모두 말 한마디 없이 굳은 표정으로 뚫어지게 TV 화면만 주시하는 긴장된 모습들.. 엄숙하기까지 했다.
나도 자연스레 TV 화면을 보게 됐고 곧 경악했다. 오죽했으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을까 싶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건 신이 나에게 준 기회였다. 이번에도 하지 말라는, 아니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그 힌트와 사인을 눈치 못 채고 강행한 내 결정이 13년 삽질의 악몽이 될 거라고는 그땐 상상도 못 했다.
분명 신은 있는 것 같다. 다만 그 대상에 따라 힌트만 주느냐? 아니면 강제로 두들겨 패서라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느냐는 타고난 복이다. 나는 전자였을 거라 보기에 신에 대한 서운한 감정과 비애를 안고 살아왔다.
요즘은 운칠기삼 아닌 운칠복삼이라는 말도 있다던데 성공하려면 야산의 정기는커녕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야 한다는 걸 실감한다.
나는 곧바로 평양 과기대에 재직 중인 미국인 교수 A에게 전화했다. 다시 통일부 차관 B, 일간지 기자 C, D 한테도 거듭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때를 회상하는 지금 정작 가슴 먹먹한건 때맞춰 걸려 온 우리 엄마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렸다는거다.
한국에 홀로 계신 노모의 전화를 그까짓 경황 좀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못 믿을 외아들 놈 도착시간만 손꼽아 기다린 당신 전화였는데..
또 와이프 생각도 났다. 불과 12시간 전 공항 출국장 입구에서 건강 챙기라며 손 흔들어주던 모습. 좋은 소식 기대하라고 웃으며 돌아섰는데, 오면서 겪은 터뷸런스처럼 가슴 한켠이 출렁였다.
그러자 난데없이 딸꾹질이 시작되고 도무지 멈추지를 않았다. 아마 하루 반나절은 계속된 것 같다. 잠을 자면서도 딸꾹질한다는 걸 상상해 본 적 있나? 살다 살다 그런 엽기적 경험은 처음이었다.
머슬 메모리는 뉴런과 시냅스를 압도한다. 특히 운명의 장난에 기인한 외상일 수록 그 외력의 강도가 남달라 무조건 반사로 작동한다. 그때를 반추함으로 말미암아 뜬금없이 딸꾹질 해대는..
지금 나처럼.
잊혀지지 않는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날의 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