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 ] 불운에 대처하는 유쾌한 견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건 미스터리며 불가항력이었다.
같은 해 봄, 나는 1년여를 주경야(필)하며 공들인 대본을 완성했다 그저 글만 쓴 게 아니라 패키징 구성과 조율도 끝냈다.
당시 블루칩으로 주목받던 신예 감독과 배역에 맞는 배우들 소속사의 긍정적 반응도 이끌어냈다. 계약서만 쓰지 않았지 작품에 맞는 감독 선임은 물론 지명도 높은 배우 캐스팅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내 대본은 한국/캐나다/미국 3국 저작권 등록도 마쳤다. 착착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남은 건 펀딩뿐이었다. 그렇게 그해 3월 만반의 채비를 하고 야심 차게 한국에 나가려 할 때 첫 번째 사단이 났다.
뜻밖의 천안함 사건이 터진 거다.
이미 비행기표를 끊었기에 부랴부랴 티켓을 취소하고 와이프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이번에 나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 남북화합 주장하는 기획을 지금 들고 가면 뭐라고들 하겠어?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거야.'
그런데 말이다. 그로부터 8개월 후 연평도는 경우가 달랐다.
사전에 아무런 힌트나 예고도 없이 내가 하늘에 떠 있을 때, 정확히 말해 인천 내리기 3시간전에 북한이 사고를 쳤다. 천안함이야 일부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퍼펙트한 사고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게 짬을 내 왔는데.. 연차랑 반차까지 쓰고 왔는데..
그냥 돌아가? 아냐 그래도 해봐? 근데, 이 상황이 도대체 말이 돼?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공교롭게 이런 일이 두 번씩 반복되다니? 우연의 일치가 아닌 개연의 일치 같았다. 신이 나에게 무슨 감정이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8개월 전 감사했던 마음이 혼란으로 바뀌고 있었다.
시기가 시기이던 만큼 우선 감독과 배우 소속사에 양해를 구했고 그쪽에서도 넉넉히 이해해 줬다. 그들은 지금 한국 영화계 트리플 A 레벨에 등극해 있다. 아무튼 그렇게 일단락됐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그런 일이 두 번에 그치지 않았다는 거다. 이후에도 누차 반복되던 괴이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왜 자꾸 나만 가꾸 그래~'가 우스개 소리 아닌 절규로 까지 와닿았다.
다 된밥에 코빠트리거나 잘 차린 상을 문지방에 걸려 연거푸 엎었기에 전생의 카르마까지 고민했었다.
살아보니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징조와 조짐을 수반하더라. 다만 그 징조와 조짐을 감지하는 육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잘 판단하느냐에 따라 많은 게 바뀐다. 나비효과 처럼.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지나고 나서야 육감의 비중을 통감한다는게 인생을 '희극과 비극'으로 가른다.
그때 난, 공항 편의점에 달려가 깡소주부터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