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의 조우 (4)

[ 매거진 ] 불운에 대처하는 유쾌한 견해

by Gun Choi


참고로 이 글은 창작이 아니라, 제가 실제 겪었던 실화입니다. 본 매거진 '불유견' 에서는 사실관계에 기반한 팩트만 기록합니다.



문 앞에서 바로 쏴 죽이려 했어! 惡黨本色



아까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랬던가. 그 집 들어갈때는 아무도 없던 아파트 주차장에 난데없이 검은 양복 차림 '깍두기떼' 오십여명(추산할때)이 쏟아지듯 달려와 나와 그를 에워쌌으니.. 그야말로 난 사막에 홀로 떨어진 꽁치의 심정이었다. 평소 나 답지않게 지하철 타고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살 떨리는 떡대들이 그에게 구십도 각도로 절하며 ‘회장님’ 어쩌고 할때 나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무슨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특히 그의 차 옆 좌석에 내가 동승하는 순간, 깍두기떼들이 일사불란하게 우르르 승합차 여러대에 나누어 타고 경호하듯 따라오던 모습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얼추 12분 38초는 넘은 것 같았다. 테이블 위의 재떨이에는 꽁초 두개가 비벼져있었고, 그가 입에 문 담배가 타들어가는 속도를 계산할때, 궐련 한 개비 길이를 60미리로 추산하고 개비당 6분 폈다 가정한다면 꽁초 포함 12분 몇 초 남짓..


즉 담배 한 개비를 ‘L’이라 할 때, t분동안 타들어간 길이 ‘I’는 내 머릿속에서 다음과 같은 관계식으로 정리됐다. ( I =1/6L x t ) 변수는 있다. 그가 강하게 빨아들일 경우 담배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4분만에 전량 연소도 가능하다.


난 그 당시 그의 담배가 타들어가는 속도와 흐르는 분초의 함수관계를 집중해 계산하고 있었다.

정신줄 놓지 않으려면 뭔가 몰입해야만 했다.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돼 석고상처럼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고개숙여 손목시계 조차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관찰하듯 보며 담배만 핀다. 대략 난감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한 상황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있나? 너무 뚫어지게 보니까 정말 기분 더러웠다. 십분넘게 이게 무슨짓이냐고? 비록 몸은 바짝 쫄아있어도 마음 만큼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지금 가오가 없지 나도 고교시절 한 주먹하던 소문난 협객이었는데 말이다.


20분전 내가 그의 차에 실려 이 호텔 커피숍에 올때까지 그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목소리를 들은건 그가 그의 집앞에서 물었던 “ 당신이 나한테 편지 보낸 사람이야? “가 전부 였다.

아무리 밤의 대통령이라도 이건 협객의 예의가 아니다. 백번양보해 나도 '밤의 구청장'쯤은 되지 않겠나.




아무튼 압구정 000 호텔 커피숍에서 그렇게 다시 얼굴을 맞대고 본 그의 용모는 영락없는 영화속 빌런 그 자체였다. 험악을 넘어 흉악했다. 우리동네 문방구 아저씨 얼굴은 감미로울 정도였다. 내가 쫙쫙 말라버린 침을 겨우 목젖으로 넘길때 그가 세번째 담배를 비벼껐다. 그리고 드디어...


‘너 우리집 주소 어떻게 알았어?’ ‘뭐하는 놈인데?’ ‘너, 문 열자마자 바로 쏴 죽여 버리려 했어!’


마치 매복조가 습격하듯 갑자기 쏟아지는 질문에 순간 머리속이 하얘졌다. 특히 쏴 죽이려 했다는 마지막 말이 귓전을 맴돌때 그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 아래로 보여줬다.


뜻밖에 2.5인치 바렐 리볼버 권총이었다. 실린더까지 제껴 보이자 다섯발 탄환이 매화꽃 형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군 복무때 특공여단 여단장 당번병을 했기에 권총을 안다. 내가 여단장 총기손질을 자주 해 일반인들 보다는 권총이 눈에 익다. 그래서 좀 놀라기는 했어도 먼저 든 생각은 아무리 어둠의 권력자라해도 어떻게 권총을 다 갖고있지? 그게 더 어리둥절했다.


더욱이 나는 이민와 북미에서 건샵을 운영한바 있고 건스미스 면허도 있다. 따라서 당시에 그의 총을 눈썰미로 회상한다면, 그 총은 스미스 앤 웨슨 치프 스페셜로 380 ACP는 물론 357 매그넘도 쏠 수 있는 괜찮은 리볼버 였다 확신한다. 이곳 북미에서는 경찰들이 부무장 용도로 주로 발목에 찬다.


그가 권총을 다시 허리춤에 대충 꽂아 넣으며 재촉하듯 내게 물었다. “ 너, 우리집 어떻게 알았냐니까? ”


‘ 제가요.. 영화를 하는데요.. 아니 글쎄.. 제 친구가.. 회장님 얘기를.. (급해서 일단 친구놈부터 팔고 봤다)


그러자, 이제껏 굳어있던 그의 표정이 한 순간 확연히 풀리며(엷은 웃음까지 머금고) 말했다.


‘ 영화라면 좀 말이 되지. 편지에 뭐 영화가 어쩌고저쩌고 하더니만, 근데 너 몇 살이냐? ‘


나는 그 대목에서 왜? 그의 태도가 바뀌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그의 말대로 영화를 한다고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비록 긴장은 하고 있지만 결기 충만해 보이는 형형한 나의 눈빛과 석고상 뺨치는 수려한 외모 때문이었을까?(그때 난 석고상이 분명했으니까) 그도 저도 아니면..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결국 협객이 협객의 기세와 포텐셜을 눈치챈 염화시중의 미소였던 걸까?

‘ 너, 방금 본 총은 내가 법무부 장관 허가받고 갖고 있는 거야. ‘


내가 보기에 순진해 보여도 그런 말을 진짜로 믿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그건 그의 실수였다. 한국에서 민간인에게 법무부가 권총을 허락한다는게 말이되나? 괜히 오버했던 본인 행동에 제 발이 저렸던 거다. 제 아무리 밤의 권력자라도 상황에 따라 헛소리 한다는것. 결국 그도 나와 다를바 없는 숨쉬는 한 인간이이었다.




그러자 커피숍 여러곳에 포진해 있던 ‘이상하게 생긴’ 중년 아저씨들이 한 두명씩 다가와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어디 감히 회장님한테..’ 그 중 유독 이상하게 생겼던 아저씨는 나중에 모 호텔 특설 링에서 열린 복싱 세계 타이틀매치 프로모터로 방송에서 목격한바 있다. 금방 알아봤다. 너무 이상하게 생겨서.


그리고 그 당시 커피숍 상황은 ‘진짜, 완전, 슈퍼 울트라 이상하게 생긴' 아저씨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행인건 그 아저씨 갈굼이 집 주소 어떻게 알았느냐는 곤란한 답변을 휘발시켜 버렸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한동안 그들은 나에게 묻지도 윽박지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만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들 역시 사뭇 긴장하고 있었다 했다. 누구라면 금방 알만한 또 다른 어둠의 경쟁세력이 '전쟁'하자는 줄 알았던 거다. 그런데 혼자 찾아온 내 모습을 스캔하자마자 바로 인생이 허탈해졌대나?

어디서 순...


그 말을 듣고 무지하게 모욕적이었다. 주먹과 얼굴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 화려했던 협객시절을 모르기에 그런 말을 하는거다. 내가 과거 혜화동 로터리 빵집들을 얼마나 주름잡던 핵빠따였는데.


참고로 그 바닥 인플루언서 김태촌도 그날 휘하 깍두기들을 데리고 커피숍에 와 있었다 하더라. 나는 못 봤는데. 알았으면 바로 달려가 사인 받았을 걸.


그들 대화중에는 내 친구놈 말처럼 유명 원로배우와 역시 과도로 면도하고 맨발로 달려갔다던 그 액션 감독 얘기도 나왔다. 그런데 면전의 나는 완전 개 무시하며 자기들끼리 얘기하는게 슬슬 기분 나빠지기 시작했다.


모야? 이 시추레이션은, 난 새야?


'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저도 말 좀 하면 안 될까요.'



* 다음번 글에서는 그가 누구였는지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의 그에 대한 평가는 저한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그가 저에게는 한 시기 특별했던 인연으로 기억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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