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 ] 불운에 대처하는 유쾌한 견해
참고로 이 글은 창작이 아니라, 제가 실제 겪었던 실화입니다. 본 매거진 '불유견' 에서는 사실관계에 기반한 팩트만 기록합니다.
“ 딩동, 딩동…”
인터폰 멜로디와 함께 기다렸다는듯이 문이 열리며 젊은 남자 둘이 얼굴을 보였다. 그런데 웬걸, 전혀 위압적이지 않았다. 평범한 체격, 대학생 같은 모습들. 둘 중 한명은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그때 그들 어깨 너머로 힐끗 보이는 안쪽 거실에서 중년 남자가 내게 물었다.
“ 당신이 나한테 편지 보낸 사람이야? “ 나는 ‘예’ 라는 대답도 못하고 겨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문이 닫히고 잠시 있다 다시 열리며 그가 나왔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하고 하마터면 ‘어? 아저씨..’ 할 뻔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 문방구 주인이랑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용모는 험악한데 성품은 아주 선량한 문방구 아저씨. 정말 쌍둥이 인가 싶을정도로 빼다 박았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예상밖이었던건 그가 후줄근한 골덴 점퍼를 걸치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혼자 나오는 거다. 동행인 아무도 없이.
그때 갈색 골덴 점퍼 상의만 아삼삼할뿐, 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비싸 보이지 않는(뒷굽이 닳은) 구두는 또렷하다.
더 기억 한다면, 11월의 꽤 쌀쌀한 날씨인데 맨발이었다. 맨발의 청춘도 아닌 맨발의 구두라? 물론 내가 잘 못 봤을 수 있고, 그가 특이한 살색 양말을 신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였다는 거다.
현관 문이 닫히고 그와 난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제서야 엘리베이터가 비좁다는걸 느꼈다. 그는 나를 등진채로 아무 말 없이 승강기 문에 이마를 붙이듯 서 있었다.
여기서 나는 뭔가 잘못 짚었구나 하는 판단을 했다.
아니 밤의 대통령 씩이나 되는데 경호원도 없이 혼자? 달랑?
동명이인이었네. 하는 생각과 함께 백번 양보해 그가 맞대도, 이렇게 경호가 허술할리 없다 봤다.
예컨대 삼성 이재용 회장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이상한 편지를 보낸 일면식 없는 사람과 경호원도 대동않고 엘리베이터를 탈까?
하물며 그는 양지의 기업 회장이 아닌, 테러에 표적이 될 수 있는 소위 한국 마피아 거물 이라며?
내가 만약 청부받은 히트맨이라면, 그리고 그가 진짜 그였다면, 그때 그는 정말 큰일날뻔 한거다.
흉기를 소지한채 기회만 노리고 있는 자객인데? 나를 등지고 ‘태연자약’ 앞만 보고 서 있는 그의 위치야말로 순식간에 치명적 짓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아니었을까.
엘리베이터가 올라올때 보다 한참을 더 내려가는 것 같았다. .
팽팽했던 긴장감이 슬며시 풀리자 그 틈을 비집고 허탈함이 밀려 왔다. 무슨 어둠의 권력자가 이래? 이 아저씨 황당했겠네.
난데없이 ‘삭풍의 11월, 한국 영화 나와바리를 나누는 뜨거운 가슴을 받아 주소서’ 하는 신파조 편지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부치고 나서 나 조차 얼굴 뜨거웠는데.
그러면 그렇지, 이름 석자로 찾아낸 주소가 그 엄청나다는 인물의 집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근데 지금은 따지구 자시구 할것 없이 당면한 이 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모면하느냐가 숙제아냐?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제가 찾던 분일줄 알았습니다.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는 그 순간 최대한 무리없이 사태를 수습할 명대사를 찾아내느라 머리에 쥐났던 기억이 바로 어제인것만 같다.
1층 문이 열리고 그가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때 나는 그가 차 키를 찾나 했다.
직접 운전해 나를 어디 커피숍으로 데려가려는 듯한 자세.
‘아이참~ 이 아저씨 기사도 없는가봐?’ 이럴거면 아까 집앞에서 바로 자초지종을 묻지, 그럼 금방 오해도 풀리고 서로 시간도 아꼈을텐데..
그러던 찰나, 나는 느닷없는 눈앞의 광경에 전율했다!!!
온 몸의 신경과 세포들이 마치 ‘대전차 지뢰를 밟은 탱크’처럼 산산조각나 터져 버리는 느낌?
이런 표현이 당시 내가 느낀 경악스러움을 현장감있게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그의 뒤를 털레털레 맥없이 따라 걷다 선채로 걍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내가 인생을 살아 오며 접한 최고 난이도의 텐션!!
나는 눈앞의 상황에 즉시 압도되어 냉동고 콜라처럼 얼어 붙고 말았다.
빌어먹을..... 그는 “진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