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 ] 불운에 대처하는 유쾌한 견해
참고로 이 글은 창작이 아니라, 제가 실제 겪었던 실화입니다. 본 매거진 '불유견'에서는 사실관계에 기반한 팩트만 기록합니다.
‘ 너 큰일 날 뻔했더라. 수 틀리면 바로 쏴 죽이려 했대! 깜짝 놀랄 대형사고 치려 벼르고 있었는데, 현관문 앞에서 척 봐도 그쪽 계통 아닌 게 발발 떨면서 말도 못 하고, 그래서 혼자 나왔었대. ‘
‘ 누가 발발 떨어, 발발 떨긴? 내가 언제? 내가 좀 긴장한 건 사실이지만 같은 말이라도 그건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지. 나 발발 떤 적 없거든, 벌벌 까진 내 인정한다. ' ^^
나랑 형 동생하는 유명 영화 제작사 대표가 외환관리법으로 구속돼 서울 구치소에서 ‘그’와 한방을 쓰고 나와 한 얘기다. (오해 없길 바란다. 나와는 딴 세상 사람들 얘기다)
그 영화사 대표 부친이 재력가로 크게 건설업을 하는데 ‘그’와 잘 아는 사이여서 아들이 구속되자 걱정하는 마음에 그에게 같이 있어 달라 부탁했다는, 그래서 구치소에서 한방 쓰며 '그'의 보호하에 있었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많지만 생략하고 아무튼 그땐 그랬던 시절이다.
영화사 대표는 그전에도 나와 '그'의 얘기를 끝까지 안 믿고 콧방귀 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어 달 수감 후 마치 본인이 겪은 일인 양 내 얘기를 자신의 무용담처럼 침 튀기고 있을 때,
나는 공교롭게도 또 김완선이 나오는 TV를 보고 있었다. 몇 해 전 친구 놈과의 꼬치구이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태원 고급 와인 바였다. 완선아 세상이 참 애매하다. 넌 어떻게 세상을 생각하니? 구름처럼 덧없니? 바람처럼 즐겁니? 아무튼 니가 뭐래도 난 네가 좋아.
여기서 강조하자면, 난 그날 그가 내게 보여줬던 권총을 이 세상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다. 무서워서? 천만에. 그건 협객 간의 암묵적 약속이다. 그가 나에게 법무부 장관 허가를 받고 총을 갖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할 때, 결국 주변에 떠들지 말라는 무언의 부탁임을 난 알았다.
영화사 대표의 그가 날 쏴 죽이려 했다는 얘기는 결국 총 아니었겠나? 사시미나 야구 방망이로 뭘 쏠 수 있을까? 그건 구치소에서 심심했던 그가 제 풀에 한 얘기였을 테고 난 한결같이 그와의 약속을 침묵으로 지켜왔다. 적어도 총얘기만큼은.
그 이후 그와의 만남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는 고비고비 내 의견을 청취해 준 기억 속의 특별한 인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내가 생각한 협객이 아니었다. 필드에서 맞짱 뜨는 그런 이력을 내세우는 주먹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능한 사업가가 정확했다. 말에도 조리가 있었다. 이거 아이러니하지 않나? 한국 사회 부조리의 한 축을 담당하던 인물이 조리까지 있다니? 까뮈가 까무러치고 시지프스가 식겁할 일이다.
아울러 그의 인격 역시 의외로 세심했다. 그가 나에게만 특별히 베푼 호의라 여기더라도, 사람을 만나보면 인성에 대한 본능적 느낌이 있잖은가? 그는 내가 그 이후 접했던 ‘국내/외’ 맨땅에 헤딩한 인물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큼 나이스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를 통한 ‘영화 제작비 투자유치’는 실패했다. 세 번째 만남을 삼성동 봉은사 근처 호텔 커피숍에서 가졌는데 그는 첫 번째 만남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첫날은 무서운 아우라였고 두 번째는 비즈니스맨, 세 번째 그날은 여유 있고 부드러웠다. 그에 더해 샤프하기까지 했다.
‘ 네 말은 잘 알겠다. 나한테 보여 줄 영화대본 고치겠다면 내가 인천 000 호텔 특실 열어주마. 거기 들어가서 몇 달이 됐든 네 마음껏 써봐. 그리고 자꾸 000(유명 원로배우)씨 얘기하는데..
그 양반은 워낙 유명한 배우고 또 국회의원까지 한 사람이라 나하고는 이런저런 연결 고리가 좀 있어. 알겠나? 뭐, 이십억을 달라고? 널 언제 봤다고? 시키는 대로 해. 그렇게 서로 알아가는 거야. ‘
‘ 고민해 보겠습니다. ‘
‘ 자슥이, 뭘 고민해.. 고민은? ‘(어처구니없는 듯 웃으며)
그때 돈 20억 원은 한국영화 ‘대작’급 제작비다. 지금 기준으로 환산한다면 한 ‘200억 원”쯤 투자해 달라는 맨땅의 헤딩이었다. 아직 세상을 알기에는 조금 이른 이십 대의 나는 진짜로 망상에 찬 큰 기대를 했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듯, 나보고 호텔에 들어가 고작 글이나 쓰라니? 난 '영화 제작자'가 꿈이지 작가가 꿈이 아닌데? 그에게 10억 원 정도는 껌값이라 마음에 들면 아무나 막 쏜다던, 구라뻥 대마왕 내 친구 놈에게 달려가 그야말로 코브라 트위스트를 걸고 싶었다.
‘ 얌마? 안 준대잖아!! 네 말대로면 20억은 겨우 껌 두 통값 이자너? 네 말만 믿고 쌩쑈했는데.. 너, 날 어떻게 아름답게 책임질래? ‘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압구정 호텔에서 이상하게 생긴 아저씨들이 날 막 윽박지르고 있을 때 내게 눈을 맞추고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던 사람은 오직 그가 유일했다.
그는 자신의 카폰 넘버까지 알려주며 문제 있을 때 언제든 연락하라 했었다. 뜨거운 악수와 함께.
대략 밤의 대통령 시즌1은 여기서 마감하고, “시즌2” 에서는 그와의 후일담은 물론 국내/외 영화업계의 숨겨진 비화와 그 가닥들을 더듬고자 한다. 재미있는 일화가 많아 사골처럼 푹푹 고아 소개드리고자 한다.
영화를 하면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어둠’과의 무용담이 잘 준비되어 있다. 그 시절 배우 캐스팅은 매니지먼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명 배우들 뒤에는 소위 ‘양아'와 ‘아치’들 무리가 종횡무진 난무 했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을 늘 한 큐로 깔끔하게 정리했었다. 오죽하면 그때 내 닉네임이 ‘단칼’이었겠나? 협객의 이름으로 혜화동 로터리 빵집을 주름잡던 핵빠따라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거라는..
고교시절 나는, 협객 생활로 불철주야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글을 써 백일장에서 뭇 여고생들 심금을 사정없이 울렸었다. 그런 나를 이제는 아무도 기억 못 한다는 게 인생무상 정말 슬프다.
그때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내가 만약 지금의 “나”로, 그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뛰어들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착한 친구들 빵은 절대 뺏어먹지 않고 내가 다 사줄 텐데..
하지만 나만 세월의 아쉬움을 남기는 건 아닐 거라 생각하며 위안 삼는다. 그러고 보면 인생을 두 번 산다면 재미도 스릴도 없겠지? 그건 결국 김 빠지는 스포일러에 다름 아닐 테니 말이다.
인생의 호연과 악연, 로망을 넘어 종국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관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월을 필요로 한다. 젊을 때는 그런 통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아쉽다. 잘됐든 못됐든 결국 인생에는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아등바등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싶다.
그도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그 역시 나름대로 인생을 잘 살아보려 ‘발버둥 친 죄’ 밖에 없다고 한다면 과연 지나친 서사일까? 그와의 만남 이후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고인인 된 그의 말년이 ‘쓸쓸’ 했다기에 나는 ‘씁쓸’하다.
그래서 덧붙인다면, 대검 중수부(정확히는 서울지검 강력부) 수사관들에게 체포되어 압송되던 그의 모습을 한국 TV 뉴스로 태평양 너머에서 접하던 오래된 그날..
앵커인지 기자인지 확실치 않지만, 시끄럽게 떠들던 그들의 멘트를 편치 않은 마음으로 회감했다. 어쩌면 그가 감당해야 할 당연한 업보였음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 왼쪽이 아련해지는.
‘ 정덕진은 총기를 휴대한다는 첩보가 있어 수사관들이 긴장했으나 다행히 저항 없이 순순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