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은 이루었는가...
꼭 1년 전, 22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명퇴식에 섰었다. 다행히 명퇴식은 코로나19로 인하여 학생들은 거의 참석 않고 조촐하게 조용히 치러졌다. 당시에는 모든 면역이 떨어지고 허약한 상태여서 군중 속에 있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큰 위압으로 느껴져서 식에 참석하는 것조차 망설였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기를 잘했다. 그 시간 또한 내겐 좋은 추억이며 행복한 순간이었다.
학교 동료들과 직원, 학생들이 정성스럽게 행사를 준비하고 서로의 세월을 두고 진심을 나누며 격려와 이별을 정리하였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던 그 시간에... 지치고 낡은 호흡에 평화롭고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난 개인적으로는 늘 형식을 거부하는 DNA가 있느냥 무슨 무슨 식이라면 질색을 하는 편이었다. 어쩌면 30년 가까이 너무 많은 **식과 ## 회의를 거치면서 쌓인 피로감과 회의감이 내 속에서 억눌려서 일 지도 모른다. 명퇴식은 학교를 떠남을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행위가 되어서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하나 덜어내는 과정이었다. 당시 오랜 세월 내가 쌓아오면서 짊어진 멍에 중 하나라도 벗어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일, 책임, 명예, 평판, 수입, 당위, 의무... 등
갑자기 하늘이 높아졌다. 구름이 더 높이 자리 잡고 처연하게 더운 여름을 내려다보는 아침을 맞았다. 그래.. 1년 전... 멍하던 이때 즈음 하늘이 떠올랐다. 그리고 떠났던 외출도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혼자가 된 시간 동안 그냥 멍했다. 시들었던 한 객체가 시간을 부유하듯 흐르지도 못하고 떠다니는 모양이었다. 크리스천답지 못하게 삶이 무엇인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 계속 되뇌었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것과 나를 부여잡는 것들을 분리시키는 것 조차 어려웠다.
1년 후 지금... 동네 건축가가 되기로 하고는 땅과 사귀고 있지만 아직 낑낑대고, 브런치를 통한 글쓰기는 아직 연습처럼 어색하지만,... 내가 노력하는 새로운 분야는 소소한 만남의 기쁨을 주고 있다. 익숙하지 않았던 타자로부터의 배움을 넉넉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량도 조금씩 늘고 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함께하는 꿈을 꿀 수 있는 행복이 이 시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