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의 ‘예산 확보’ 자화자찬, 자립하지 못한 지방

지자체 재정자립도의 현실과 '보조금 헌터'가 된 자치단체장들

by 달품씨

지자체장의 ‘예산 확보’ 자화자찬, 자립하지 못한 지방의 민낯


1. 도입: 축제와 리본 커팅 뒤에 가려진 진실

어느 지역을 가도 현수막이 걸린다. "축! OO사업 국비 500억 확보!" 시장님은 웃으며 가위를 들고, 시민들은 박수를 친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말을 한다. 그 500억은 우리 지역이 스스로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받아온 '숙제'이자 '빚'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우리는 언제부터 지자체장의 능력을 '돈을 얼마나 잘 벌어오는가'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지갑을 얼마나 잘 여는가'로 평가하게 된 걸까?


2. 재정자립도, 우리 지역의 '진짜 실력'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란 무엇인가?

재정자립도는 지자체의 전체 재원 중 지방세와 세외수입(지자체가 스스로 벌어들이는 돈)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쉽게 말해 "부모님(중앙정부) 도움 없이 내 월급(지방세)으로만 생활비의 몇 %를 감당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 평가 방식: (지방세 + 세외수입) ÷ 일반회계 예산규모 × 100

· 현재의 위기: 2024년 기준 전국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40%대 중반에 불과하며, 지방 소멸 위기 지역은 10% 미만인 곳도 다수 있다.


3. 왜 우리 지역의 곳간은 항상 비어 있을까?

재정자립도가 낮은 이유는 구조적 문제와 관성적 태도가 결합되어 있다. 인구가 줄면 세금을 낼 사람이 사라지고, 기업이 없으니 세수 기반이 무너진다. 결국 중앙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게 되고, 지자체는 독자적인 정책을 펼칠 힘을 잃는 '종속의 악순환'에 빠진다.


1. 국세 중심의 조세 구조: 대한민국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약 7:3(혹은 8:2) 정도로 중앙 집중적이다.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이 일단 중앙으로 올라간다.

2. 산업 기반의 부재: 인구는 줄고 기업은 떠나게 된다. 세금을 낼 사람이 없으니 지자체는 자생력을 잃고 만다.

3. 정치적 한계: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지자체장에게 '산업 구조 재편'은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반면 '보조금 확보'는 단기적인 생색내기에 최적이다.


4. [사례] 소멸 위기와 재정 절벽에 선 5개 지역

다음은 2024-2025년 데이터 기준, 재정자립도가 10% 내외이면서 인구 소멸 위험 지수가 극히 낮은 대표적인 지역들이다.


· 경북 의성군: 인구 소멸 고위험 지역의 역설

o 재정자립도: 약 8.6%

o 실상: 지자체장이 매년 '역대 최대 예산 확보'를 치적으로 내세우지만, 실질적인 기업 유치나 세수 증대는 보이지 않는다. 예산의 대부분이 지역의 자생력을 높이기보다 일회성 공모 사업 위주로 투입되고 있다.


· 전남 영암군: 'F1'이라는 과거의 망령

o 재정자립도: 약 10.9%

o 실상: 수천억 원의 국비를 쏟아부어 지은 F1 경기장은 매년 막대한 적자와 유지비를 기록하며 지자체의 짐이 되었다. '예산 확보' 자체가 재정에 얼마나 큰 재앙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 전북 남원시: 시(市) 단위마저 무너뜨린 인프라의 독

o 재정자립도: 약 11.3%

o 실상: 대규모 관광 인프라를 국비로 조성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운영비는 고스란히 남원시가 떠안게 되었다. 결국 '따온 예산'이 지자체의 숨통을 조이는 재정 압박의 주범이 되었다.


· 충북 괴산군: 농촌 소멸을 막지 못하는 스마트팜

o 재정자립도: 약 10.5%

o 실상: 인구 소멸 위험 지수가 '고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지자체장은 스마트팜 등 국비 공모 사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정작 지역 내 실질적인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 경남 남해군: 대형 인프라 유치라는 화려한 함정

o 재정자립도: 약 10.2%

o 실상: 남해-여수 해저터널 등 수천억 원 규모의 사업 유치를 축하하는 현수막은 곳곳에 걸려 있다. 하지만 정작 군이 스스로 벌어들이는 자체 수입은 수년째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5. 지자체장의 마인드셋: '전략가'인가, '영업사원'인가?

많은 지자체장이 스스로를 '지역의 CEO'라고 부르지만, 실제 행동은 '정부 예산 영업사원'에 가깝다.

· 실적의 역설: 지자체장은 다음 선거를 위해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하다. 10년 뒤에 효과가 나타날 데이터 인프라 구축보다는, 당장 국비를 따와서 짓는 거대한 랜드마크나 대관람차가 표를 얻기 쉽다.

· 매칭 펀드의 늪: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면 지자체도 일정 비율의 돈(매칭 비용)을 내야 한다. 보조금을 많이 따올수록 오히려 지자체의 가용 예산은 줄어들고, 운영비만 갉아먹는 '하얀 코끼리(돈만 먹는 애물단지)'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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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해결책: '수혈'에서 '자생'로

이제 주민은 "얼마를 가져왔느냐"가 아니라 "가져온 돈으로 어떤 수익 구조(Self-Sustaining)를 만들었느냐"를 물어야 한다.

1. 매칭 펀드 재검토: 보조금을 받기 위해 억지로 투입하는 지방비(매칭)가 오히려 지역의 자생적 사업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2. 로컬 비즈니스 모델링: 100억짜리 건물을 짓기보다, 지역의 데이터를 분석해 외부 유동 인구가 지갑을 열 수 있는 '작지만 강한' 비즈니스를 지원해야 한다.

3. 지방세 구조 개편 목소리: 지자체장들이 모여 정부에 돈을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지방세 비중을 높여달라는 구조적 요구를 데이터로 증명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4. 주민의 감시: "얼마를 따왔느냐"가 아니라 "그 돈으로 어떤 수익 구조를 만들었느냐"를 묻는 유권자가 많아져야 한다.


7. 결론: 자립 없는 자치는 허구다

중앙정부의 보조금에 목을 매는 한, '지방자치'는 이름뿐인 구호에 불과하다.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는 지자체는 중앙의 정책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얼마를 가져왔는지' 자랑하는 지자체장 대신, '우리 지역이 어떻게 스스로 살아남을지'를 고민하는 실용적 리더가 나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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