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국 시장은 오라클이라는 거대한 경고음을 들었습니다. 실적 발표 직후 주가가 무려 15%나 폭락했죠. 표면적인 이유는 매출 부진이었지만, 시장이 진짜 놀란 건 씀씀이였습니다. 오라클은 내년에 AI 인프라 구축에만 500억 달러를 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벌어들이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아져서,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는데도 말이죠.
이건 마치 월급은 300만 원인데, AI 공부를 하겠다며 500만 원짜리 고액 과외를, 그것도 빚을 내서 등록한 것과 같습니다. 시장은 묻고 있습니다. 과연 그 빚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요.
여기서 우리는 빅테크라고 다 같은 빅테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1군 기업들은 넘쳐나는 현금으로 300억, 400억 달러씩 투자를 합니다. 이들은 금리가 오르건 말건 상관없는 요새입니다. 하지만 오라클 같은 2군은 다릅니다. 이들은 채권을 발행해 빚을 내서 투자를 합니다. 심지어 수명 3~5년짜리 AI 칩을 사기 위해 40년 만기 채권을 찍어냈습니다. 칩은 고철이 되어도 30년 넘게 이자를 갚아야 하는, 아주 위험한 듀레이션 불일치 도박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는 케빈 해싯의 발언은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4%로 오르면 금리를 내릴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성장을 위해 저금리를 원한다지만, 과잉 투자가 물가를 자극해 4% 선을 넘으면 연준도 구원투수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금리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빚을 내서 잔치를 벌인 기업들은 그 이자 비용이라는 청구서에 짓눌리게 될 겁니다.
어제 오라클 주가는 폭락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채 금리는 오히려 내려갔습니다. 시장은 오라클의 과잉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면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는 디플레이션 시그널을 읽은 겁니다. 동시에 위험한 주식보다는 안전한 국채로 도망가자는 심리도 작용했죠.
결국 AI 투자의 꿈꾸는 단계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증명하는 단계입니다. 4,0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으면, 이제 그만큼의 현금을 벌어오라는 게 시장의 요구입니다. 빚으로 쌓아 올린 AI 성은 금리라는 바람 앞에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화려한 AI 청사진보다는, 기업의 현금흐름표와 부채 비율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시점입니다. 누가 진짜 부자이고, 누가 빚쟁이인지 가려내는 냉정한 눈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