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의 썰매를 막아선 거인: 2025년형 구축효과

by 구미잉

12월의 중순, 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썩여야 하지만 주식 시장은 묘하게 조용합니다.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던 산타 랠리, 즉 연말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올해는 유독 희미해 보입니다. 투자자들은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 계좌를 들여다보고 있죠. 도대체 산타의 썰매는 어디서 멈춰 선 걸까요?

범인은 바로 구축효과라는 낡은 경제학 교과서 속에 숨어 있습니다. 구축효과는 정부가 빚을 내서 돈을 쓰면 시중 금리가 올라 민간 기업이 쓸 돈이 말라버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난 10년 넘게 우리는 이 단어를 잊고 살았습니다. 정부가 빚을 내도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다 받아줬으니까요. 하지만 중앙은행이 돈줄을 죄기 시작한 지금, 이 망령이 되살아났습니다.


지금 미국 재무부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블랙홀처럼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민간 기업들도 AI라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해졌습니다. 오라클이 빚을 내서라도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죠. 정부도 돈이 필요하고 기업도 돈이 필요한데, 시장에 돈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정부라는 거인이 시중의 자금을 다 빨아들이자, 돈의 값인 금리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은 더 비싼 이자를 내야만 돈을 빌릴 수 있는 처지가 되었죠. 오라클 주가가 폭락하고 신용 부도 위험이 급등한 건, 바로 이 자금 쟁탈전에서 민간이 밀려나고 있다는 비명과도 같습니다.


데이터는 이 상황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인 10년물 실질 금리(TIPS)는 1.93%까지 올랐습니다. 시장에서는 실질 금리 2.0%를 주식 시장의 킬 존(Kill Zone)이라 부릅니다. 은행에만 넣어둬도 물가보다 2% 더 높은 이자를 주는데, 굳이 위험한 주식을 살 이유가 사라지는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위험한 임계점 턱밑에 와 있습니다.


올해 산타 랠리가 오지 않는다면, 그건 산타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정부라는 거인이 굴뚝을 막고 서서 민간이 가져가야 할 선물 보따리를 미리 챙겨갔기 때문일 겁니다. 화려한 AI 투자 뉴스 뒤에는 치솟는 조달 비용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지금은 막연한 상승을 기대하기보다, 높아진 금리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현금 부자 기업이 누구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2026년은 빚이 있는 자에게는 혹독한 겨울이, 현금이 있는 자에게는 기회의 봄이 될 테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고장 난 나침반: 금리와 환율의 공식이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