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히든카드, 돈 안 쓰고 돈 푸는 마법

by 구미잉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재정 적자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감세로 돈을 풀고 싶지만 곳간이 비었고, 관세로 메우려니 법적 분쟁과 물가 상승이 걱정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멈출까요. 아닙니다. 그에게는 아직 꺼내지 않은, 어쩌면 가장 강력할 수 있는 히든카드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금융 규제 완화입니다.


정부가 돈이 없다면 민간이 돈을 쓰게 만들면 됩니다. 지금 미국 은행들의 금고에는 막대한 자본이 잠겨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각종 규제가 은행들로 하여금 돈을 꽉 쥐고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트럼프 2.0의 핵심은 이 자본의 빗장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마법을 부리는지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국채 시장의 구원투수가 등장합니다. 미국 정부가 빚을 내려면 국채를 찍어야 하는데, 지금은 사줄 사람이 마땅치 않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SLR(보완적 레버리지 비율) 규제 완화입니다. 쉽게 말해 은행이 국채를 보유할 때 쌓아야 하는 자기 자본 부담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2020년 팬데믹 때 이 효과를 목격했습니다. 당시 연준이 한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주자, 은행들은 불과 1년 만에 국채와 기관채 보유량을 1조 달러나 늘렸습니다. 2025년의 규제 완화는 은행들을 다시 국채 시장의 큰손으로 불러들여, 국채 금리를 안정시키는 강력한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기업의 주가를 밀어 올리는 자사주 매입 슈퍼사이클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대형 은행들은 바젤 III라는 규제 때문에 이익이 나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돈을 쌓아둬야 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 규제를 자본 중립적으로 완화해 주면, 족쇄가 풀린 막대한 초과 자본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업계에서는 향후 몇 년간 은행들이 5천억 달러가 넘는 돈을 주주 환원에 쏟아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금융주 전반의 밸류에이션을 높이고, 시장 전체에 부의 효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셋째, 시한폭탄인 상업용 부동산 위기를 막아줍니다. 지금 미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은행은 위험한 대출을 회수하거나 충당금을 쌓아야 합니다. 하지만 규제 당국이 위험 가중치를 낮춰주고 대출 만기 연장을 용인해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당장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대신,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버틸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죠. 이른바 연장과 가장(Extend and Pretend) 전략이 제도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아주는 쿠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국 규제 완화는 정부가 재정을 한 푼도 쓰지 않고도 국채를 소화하고, 주가를 부양하고, 부동산 위기를 막아내는 일석삼조의 묘수입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이것은 금융 시스템의 안전벨트(자본 버퍼)를 느슨하게 풀어 성장의 속도를 높이는 도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성장이 급한 트럼프 행정부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카드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뉴욕 월가에서 들려오는 규제 완화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2026년 유동성의 흐름을 결정할 진짜 수도꼭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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