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난해진 시대, 국채는 더 이상 방패가 아니다

이지 머니의 종말, 1부

by 구미잉

투자의 세계에는 영원불변할 것 같은 믿음이 몇 가지 있습니다. 주식이 떨어지면 채권이 오르고, 현금은 위기 때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하지만 2025년 지금, 이 오랜 상식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진앙지는 바로 미국 정부의 텅 빈 지갑입니다.


2024년, 미국 재정 역사에 기록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연방 정부가 빚을 갚느라 쓴 순이자 비용이 8,820억 달러를 기록하며, 나라를 지키는 데 쓴 국방비 8,740억 달러를 추월해 버린 것입니다. 세계 최강대국이 총알 사는 돈보다 이자 갚는 돈을 더 많이 쓰게 된 이 기막힌 상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재정 우위 시대의 개막입니다.


지난 10년은 정부가 빚을 내도 연준이 돈을 찍어 막아주던, 돈이 흔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빚이 너무 많아져서 연준조차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정부가 가난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역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GDP 대비 부채가 100%를 넘었던 1940년대 미국 정부는 빚을 갚는 대신 금융 억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금리는 2.5%로 묶어두고 물가는 10%씩 오르게 내버려 둔 것이죠.


이 시기 국채를 들고 있던 투자자들은 겉으로는 원금과 이자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에 구매력을 도둑맞았습니다. 1941년에 산 국채의 가치는 1951년에 30% 가까이 쪼그라들었죠.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빚의 실질 가치를 녹여 없앴습니다. 2025년의 우리도 비슷한 위험 앞에 서 있습니다. 재정 적자가 고착화된 지금,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2%로 끌어내리기보다 3~4% 선에서 용인하며 빚을 녹이려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믿었던 주식 60, 채권 40의 포트폴리오는 더 이상 마법의 방패가 아닙니다. 재정 위기 때는 주식이 떨어질 때 채권도 같이 떨어지는 동반 하락의 공포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국채가 안전자산이 아닌 위험자산이 될 때, 우리는 어디로 숨어야 할까요? 역사는 금이나 원자재 같은 실물 자산, 그리고 가격 결정력을 가진 1등 기업의 주식이 그나마 구매력을 지켜줬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가난해진 시대, 이제 투자의 제1원칙은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유발한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내 자산의 구매력을 지키는 것입니다. 국채라는 낡은 방패를 내려놓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이기는 투자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