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1부

정부의 귀환을 외친 예언가, 케인즈

by 구미잉

2020년 팬데믹 당시, 내 통장에 갑자기 꽂혔던 재난지원금, 기억하시나요? 미국에서는 ‘CARES Act’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나누어주는 등, 전 세계 정부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돈을 풀었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개입해야 한다는 이 생각,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오늘은 그 생각의 뿌리를 찾아,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한 거인의 이야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1929년 대공황이 세상을 덮치기 전까지, 경제학계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가만히 두면 시장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낙관론이었죠. 하지만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이 믿음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실업률은 재앙적인 수준으로 치솟았고, 경제는 10년 넘게 깊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때,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등장하는데요. 그는 시장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고전학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완전히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죠. 그의 핵심 아이디어는 ‘유효수요’라는 개념으로 요약됩니다. 경제가 불확실해지면, 사람들은 불안해서 지갑을 닫고 기업들은 투자를 멈춥니다. 이렇게 모두가 몸을 사리면 수요가 사라지고, 경제는 끝없는 추락의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죠.


케인즈의 처방은 명쾌했습니다. 민간이 돈을 쓰지 못할 때, 유일하게 돈을 쓸 수 있는 주체, 즉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도로를 놓고 댐을 쌓는 등 공공사업을 통해 의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내면, 그 돈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가 꽁꽁 얼어붙었던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죠. 특히 정부가 쓴 1달러는 단순히 1달러로 끝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소득과 소비를 거치며 몇 배의 효과를 내는 ‘승수 효과’를 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마른땅에 물 한 바가지를 부으면, 그 물이 땅속 곳곳으로 스며들어 주변의 더 넓은 땅을 촉촉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죠.


2020년 팬데믹 당시 미국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은, 80여 년 전 케인즈의 아이디어가 21세기에 그대로 재현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시 미 의회예산처(CBO)는 이 부양책의 재정 승수를 약 0.58로 추산했는데, 이는 정부가 1달러를 쓸 때마다 58센트의 추가적인 GDP 성장을 이끌어냈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의 이론이 모든 문제의 만병통치약은 아닐 겁니다. 케인즈의 처방은 ‘수요 부족’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탁월했지만, 정부가 풀어놓은 막대한 돈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 역시 존재하죠. 그럼에도 ‘위기 시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케인즈는 ‘시장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시대를 초월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는데요. 그가 남긴 이 거대한 유산과 숙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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