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은 비우고 추억은 채우고

돈의 온기 4부

by 구미잉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채우는 데 익숙한 삶을 살아갑니다. 통장의 잔고를 늘리고 자산을 불리는 것이 성공의 척도라고 믿으며 현재의 욕구를 참고 미래를 위해 저축합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끝자락에 섰을 때 과연 가득 찬 통장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까요.


헤지펀드 매니저 빌 퍼킨스는 그의 저서에서 파격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통장에 돈을 남기고 죽는 것은 그 돈을 벌기 위해 바친 당신의 시간을 낭비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돈을 생명 에너지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노동을 통해 얻은 돈은 결국 유한한 인생의 시간과 맞바꾼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벌어놓은 돈을 쓰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일부를 허공에 날려버린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호주에서 수년간 말기 환자들을 돌본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기록한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보면 그 누구도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지 말았어야 했다거나 내 감정에 솔직하게 살았어야 했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워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었습니다.


경제학적으로도 돈의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20대의 100만 원과 80대의 100만 원은 명목상의 숫자는 같을지 몰라도 그것으로 살 수 있는 효용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건강한 두 다리로 세상을 누빌 수 있을 때 떠나는 여행은 평생에 걸쳐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의 배당금을 지급합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해진 노년의 여행은 그 배당금을 누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비에도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돈이 있을 때가 아니라 건강과 시간이 있을 때 우리는 경험에 투자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남기는 유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부모가 죽은 뒤에 재산을 물려주는 차가운 손의 상속을 택합니다. 하지만 자녀가 정말로 돈이 필요한 시기는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30대 전후입니다. 부모가 사망하여 상속이 이루어지는 시점은 자녀 또한 이미 늙어버린 60대일 확률이 높습니다. 빌 퍼킨스는 살아있을 때 자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건네주는 따뜻한 손의 증여를 제안합니다. 그것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면세점 재벌 척 피니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생전에 전 재산을 기부해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습니다. 가장 부유한 삶은 통장에 0원이 남고 마음에 추억이 가득 찬 상태로 떠나는 것입니다.


결국 돈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으로 가기 위한 연료일 뿐입니다. 연료를 아끼느라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연료통이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여행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은 차가운 숫자지만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경험을 위해 쓸 때 비로소 온기를 가집니다. 부디 당신의 삶이라는 여행이 끝나는 날 손에 쥐어진 마지막 영수증에는 남겨진 잔고가 아닌 사랑과 추억이 가득 찍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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