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환 시장의 흐름을 보면 지난 수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암묵적인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동안 주요국들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달러 강세를 어느 정도 용인해 왔습니다. 미국이 물가를 잡아야 전 세계 금리가 안정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주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을 기점으로 이 공조 체제에 뚜렷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유로존은 그동안 유로화 강세를 통해 수입 물가를 낮추는 전략을 취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독일을 비롯한 제조업 국가들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부작용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최근 라가르드 총재가 유로화 강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은 더 이상 물가 안정만을 위해 성장을 희생할 수 없다는 정책 전환의 신호로 읽힙니다. 즉 인플레이션 파이터에서 수출 경쟁력을 지키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겠다는 의지입니다.
일본의 상황도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총선 압승 이후 다카이치 정권은 경기 부양을 위해 엔화 약세를 내심 바라고 있지만 과도한 부채 부담 때문에 금리를 올리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져 있습니다. 수출을 살리자니 수입 물가가 걱정이고 물가를 잡자니 경기가 식어버리는 딜레마 속에서 일본 역시 자국 통화의 약세를 통해 숨통을 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유럽과 일본이 동시에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려 할 때 발생합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달러화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약한 달러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차기 연준의 통화 정책 기조가 긴축을 유지한다면 시중의 유동성은 결국 가장 강한 통화인 달러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2018년 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에도 환율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흔들리면서 자산 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된 바 있습니다. 환율은 단순히 두 나라 돈의 교환 비율이 아니라 국가 간 부의 이동을 결정짓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입니다. 한쪽이 밸브를 잠그거나 열면 다른 쪽에서는 반드시 충격이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이 거대한 흐름의 중간에 끼어 있는 형국입니다.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과 경쟁해야 하면서 동시에 강달러로 인해 높아진 에너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이중고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하루하루의 등락폭보다는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바라보는 곳이 어디인지 그 시선의 변화를 읽어내야 할 시점입니다. 환율 동맹이 느슨해진 자리에는 철저한 각자도생의 논리가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