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계가 말해주는 것들

by 구미잉

연휴와 주말이 겹쳐서인지 시장도 모처럼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합니다. 쉴 새 없이 깜빡이던 시세판이 꺼진 이 시간은 우리에게 숫자에 가려져 있던 더 큰 흐름을 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최근 시장을 지배했던 감정은 단연 현기증이었습니다. AI 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며 당장이라도 세상이 바뀔 것 같은 기대를 주는데 정작 내 계좌와 기업의 실적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죠.


우리는 AI가 고속열차처럼 빠르게 우리 앞마당에 도착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깔리지도 않은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표를 비싼 값에 미리 사두었습니다. 나스닥의 주가수익비율이 33배를 넘어선 것은 바로 그 조급함이 만든 가격표였습니다.


하지만 주말을 맞아 잠시 멈춰서 보니 AI라는 혁명은 날렵한 고속열차가 아니라 아주 무겁고 거대한 화물 열차에 가까워 보입니다. 싣고 오는 보물은 엄청나지만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튼튼한 철로와 거대한 정거장을 짓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데이터를 보면 이 속도의 불일치가 명확합니다. AI 모델은 매달 똑똑해지는데 그 AI를 돌릴 전기를 끌어오는 데는 평균 4년이 걸립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의 속도에 취해 하드웨어의 물리적 시간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과거 인터넷 혁명 때도 그랬습니다. 기술은 이미 나왔지만 그 기술이 진짜 돈이 되는 시점까지는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긴 숙성기가 필요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답답함은 기술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그 숙성기를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앞서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장이 멈춘 이 시간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투자는 어떤 속도에 맞춰져 있습니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기대감에 배팅하고 있다면 작은 흔들림에도 멀미를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속도 즉 인프라가 깔리고 기업이 돈을 버는 묵직한 속도에 맞춰져 있다면 지금의 변동성은 견딜 만한 과정이 됩니다.


투자의 대가들은 늘 기다림이 돈을 벌어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는 기다림을 잊고 살았습니다. 무언가를 사면 당장 올라야 하고 성과는 다음 분기에 바로 찍혀야 한다는 단기주의가 우리 눈을 가렸습니다.


이번 연휴에는 잠시 차트에서 눈을 떼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자연의 속도처럼 거대한 변화는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갑니다. 멈춰 있는 시간 동안 단단하게 다져진 마음의 중심은 다시 시장이 열리고 요동칠 때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입니다. 남은 연휴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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