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망령, 스태그플레이션

by 구미잉

1970년대 이전의 세상은 낙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미국과 서유럽은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죠. 경제는 끝없이 성장할 것만 같았고, 정부가 재정 지출과 통화 정책을 섬세하게 조율하면 경기 침체라는 고질병을 길들일 수 있다는 ‘케인스주의적 합의’가 시대를 지배했었는데요. 당시 경제학자들의 손에는 ‘필립스 곡선’이라는 마법 같은 메뉴판이 들려 있었습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에는 안정적인 역관계가 존재해서,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면 완전 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죠.


하지만 이 평화로운 시대의 기반은 이미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비용과 막대한 사회복지 지출로 달러가 과도하게 풀리자, 1971년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던 금태환 제도를 폐지하는 ‘닉슨 쇼크’를 단행합니다. 전후 세계 경제의 닻이었던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세상은 불안정한 환율 변동의 시대로 접어들었죠. 그리고 바로 그 혼란의 틈을 비집고, 경제학 교과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입니다. 경제 성장은 멈추는데(Stagnation), 물가는 치솟는(Inflation) 모순적인 현상이었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높아지는, 필립스 곡선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는 정책적 악몽이 시작된 겁니다.


모든 비극에는 방아쇠가 있습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의 불똥이 전 세계로 튀었습니다.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가 석유를 무기로 서방 세계를 압박하면서, 유가는 불과 몇 달 만에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네 배나 폭등했죠. 이는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었습니다. 경제의 혈액과도 같은 석유 공급에 문제가 생기자 주유소에는 끝없는 줄이 늘어섰고, 공장들은 멈춰 섰으며, 모든 생산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1979년이란 혁명으로 인한 2차 오일 쇼크는 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유가를 34달러 위로 밀어 올렸고요.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아서 번스는 이 전대미문의 괴물 앞에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그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연준의 통화 정책이 아니라, 강력한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같은 ‘비용 인상’ 요인이나 석유 파동 같은 ‘특수 요인’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이미 멈춰 선 경제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것이 두려웠고,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도와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도 무시할 수 없었죠. 반대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풀자니, 미친 듯이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결국 연준은 뚜렷한 방향 없이 금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스톱-고(Stop-Go)’ 정책을 반복했고,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연준의 신뢰가 무너지자, 인플레이션은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었는데요. 노동자들은 치솟는 물가에 맞춰 더 높은 임금을 요구했고, 당시 강력했던 노조는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기업들은 늘어난 인건비를 제품 가격에 전가했죠. 이는 다시 물가를 끌어올려 더 높은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지는 ‘임금-물가 악순환’을 만들어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앞으로도 물가는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한번 자리 잡자, 인플레이션은 걷잡을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은 단순한 경제 위기를 넘어, 하나의 시대정신이 막을 내렸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케인스주의적 낙관은 무너졌고, 중앙은행의 무력함은 뼈아픈 교훈을 남겼죠. 그리고 바로 이 뼈아픈 실패의 경험이, 훗날 폴 볼커라는 강력한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소환하고 오늘날 중앙은행의 행동 원칙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20년대,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충격과 지정학적 갈등으로 다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우리는, 어쩌면 반세기 전의 이 오래된 거울을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전 01화프롤로그: 우리는 왜 역사의 거울 앞에 서야 하는가?